<업계지도>반도체,품질 초일류-25년만에 수출 51억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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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60년대 말 한국에 처음 소개된 반도체는 미국에서 온 샘플을공항세관 직원이『순금으로 도금된 이상한 물건』이라며 통관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25년만에 한국산 반도체는 없어서 못파는 최대의 수출품목(9월말 현재 수출액 51억6천만달러)이 됐고 우리산업의최대 광맥으로 등장했다.최근 세계 컴퓨터의 골리앗인 미국 IBM이 한국업체에 거칠게 항의를 해왔다.반도체의 납품이 당초 약속보다 늦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당장 최고 경영자가 현지에 달려가 머리를 조아려야 마땅한 일이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거꾸로 우리쪽이IBM에 모든 반도체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IBM의 이런 압력은 가뜩이나 물량이 달리는 판에 자사에만 유리하게 해달라는 콧대높은 큰손의 횡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후 정작 다급해진 쪽은 IBM.아무리 IBM이라지만 질 좋고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갖춘 한국산 반도체를 외면할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엔高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면서 IBM과 애플.델등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들은 일단 한국산 반도체를 가능한한 많이 확보하고 모자라는 부분을 일본산으로 메우고 있다.
어느 사이 한국업체는 세계 반도체의 공급을 좌우하고 가격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서게됐다.더이상 미국과 일본의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실력으로 맞설수 있게된 것이다.
일본 노무라 연구소도 지난 3월 보고서에서『이미 한국반도체 산업은 D램 분야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우리 반도체 산업은 60년대말 싼 임금을 노려 조립공장 형태로 진출한 美코미社와 페어차일드.모토롤라社등에 의해 초라하게 시작됐다.74년 삼성그룹이 한국반도체를 인수,전자손목시계용 반도체를 개발해 처음 재미를 보았고 여기에 자극받은 럭키금성그룹(79년 대한반도체 인수)과 현대그룹(83년 美실리콘 밸리에 현지법인 설립)이 반도체사업에 뛰어들면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국내 반도체의 轉機는 83년2월 삼성전자가 D램 반도체에초점을 맞추고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면서부터.
83년12월1일 64KD램을 개발,삼성은 화려하게 출발했지만엄청난 실패를 겪었다.공급과잉으로 84년 3달러50센트 하던 64K D램이 이듬해 개당 30센트로 폭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계속 투자를 밀어붙였고 86년부터 불어닥친 2백56KD램의 품귀현상은 새로운 투자의욕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삼성전자가 86년부터 엄청난 흑자를 올리기 시작했고,87년에는 금성일렉트론과 현대전자도 흑자로 돌아섰다.
일본이 소극적인 틈을 타 1메가.4메가D램에의 과감한 투자로승부를 건 국내업체들은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반도체 선풍을 타고더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개인용 컴퓨터의 그래픽화와 멀티미디어화,무선통 신의 고기능화가진행되면서 반도체 수요는 더욱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에따라 4메가D램은 삼성전자가 월 9백만개 생산량으로 세계최대 공급업체로 올라섰다.현대전자도 5백만개,금성일렉트론이 4백만개로 3社는 모두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해도 주문량의 80%밖에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또 차세대 16메가D램도 한국의 생산량이 일본을 압도하고 있고,64메가D램의 개발속도도 이미 일본을 추월해 당분간 한국 반도체의 강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삼성전자는 월 3만장의 웨이퍼를 가공하는 5라인에 이어 비슷한 규모의 Ф 라인 건설에이미 착수했고 현대전자도 올해 월 1만장,내년에는 웨이퍼 2만장을 처리할수 있는 규모의 증설을 계획중이다.
금성일렉트론도 내년까지 웨이퍼 1만7천장의 가공설비를 갖추어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는 어느 사업보다 선행투자의 위험이 높아 앞날을예측하기란 쉽지 않다.최대의 호황을 누리던 일본이 2백56KD램 시장전망에 실패,생산량을 줄이는 바람에 바이어들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들면서 일본 반도체의 쇠퇴가 시작됐던 것은 우리도 다시 한번 음미해볼 대목이다.
〈李哲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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