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대선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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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석가의 종제로 일찍이 출가하여 그에게서 도를 닦은 제자 가운데 제파달다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마가다국의 왕자가 그에게 귀의해 아침 저녁으로 5백채의 수레에 음식을 싣고와 공양하자 그는 대뜸 변신했다. 석가의 후계자 자리를 노린 것이다. 제자들이 석가에게 이 사실을 고해바치자 그는 이렇게 제자들을 타일렀다고 전한다.
『그가 얻고 있는 명예와 이익을 부러워해서는 안된다. 그의 명리는 결국 그를 해치고 그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파초는 열매를 맺으면 스스로 파멸해가고,대나무는 열매를 맺으면 시들어가고,노새는 새끼를 배면 죽는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도 명리를 탐하면 스스로 파멸하게 된다.』
석가의 이같은 가르침은 불교에 있어 그 도의 핵심을 이룬다. 선가에서의 「평상심시도」라는 가르침과 관련해보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명리를 초월하기가 어렵고,따라서 명리를 버리는 것이 석가의 뜻을 따르는 길임을 암시한다. 불교 교리의 핵심은 이처럼 평범한 현실의 한 가운데 진리가 있다는 점이다.
해탈이니,열반이니 하는 이른바 「초월」의 경지도 일상적인 실천의 내부에서만 구체적인 발견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생들에 대한 가르침이 그러할진대 그 교리를 전파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성직자들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입적한 조계종 성철종정은 그같은 석가의 가르침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고쾌이었다. 81년 1월 종정에 취임하면서 「산은 산이요,물은 물이로다」는 알쏭달쏭한 법어를 내놓았던 그는 그 이후에도 신년과 불탄일 등에 「붉은 해가 서쪽에서 떴다」든가,「나무새(목조)가 노래를 한다」 같은 묘한 법어로 화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 알쏭달쏭한 법어들은 유와 무에 거칠 것이 없는 깨달음의 경지에서 바라본 제자실상이다. 한 티끌 속에 무량의 만유가 존재한다는 「일즉다다즉일」의 절대진리를 터득하고서야 나올 수 있는 말들이다.
누더기 가사를 걸치고 바깥 출입을 삼가며 오직 연구와 수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데만 평생을 몸바친 성철스님은 확실히 이 시대의 마지막 대선사로 불릴만하다. 특히 명리를 초개처럼 여기고 세상을 고즈넉하게 관조해온 자세는 모든 성직자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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