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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실이 부부의 초보 요리방] 다섯살 조카 입을 맞춰라 돈가스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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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니이모-!!!!"

오랜만에 친정집 전화번호를 눌렀더니 불쑥 튀어나온 간지러운 목소리.

'이크, 이게 누구???' 갑자기 머리가 복잡하다.

'맞다, 포항에 사는 조카녀석이 외할머니 집에 놀러온 모양이군'.

언니보다 먼저 결혼한 동생이 친정 나들이를 한 게다. 올해 다섯살이 된 재웅이는 누군지도 모르고 대뜸 "이모"를 찾는다. 돌발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반가운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으응, 재웅이 왔구나! 비행기 타고 왔어요? 엄마랑 아빠도 같이 왔어요? 밥 많이 먹고 많이 컸지요?"

수다쟁이 이모의 조카 상경 환영 인사가 요란스럽다. 한참 "네에, 네에"하며 대답만 하던 녀석이 갑자기 "그런데, 니이모- 동까쓰는 언제 해주세요? "라고 묻는 것이다.

'뜨아, 무신 돈가스'. 동생이 어린 아이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순 없지만 적당히 얼버무려야 할 상황 같았다.

"으응, 재웅이가 이모네 놀러오기만 하면 해주지이-"하며 맞장구를 쳤더니 "그럼, 내일 갈게요-"란 답이 되돌아 왔다. 그래봤자 혼자 올 리는 없고, 엄마의 뜻에 따라 움직일 텐데 아무런 생각 없이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틀 뒤, 회사로 걸려온 휴대전화를 받으니 "니이모-"다. "니이모-, 저 오늘 갈게요"라고 자기 말만 하곤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허억.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얼른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가 돈가스 해줄 테니 오라고 했다며 애가 얼마나 졸라대는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오늘 데리고 가려고. 해 줄 거지?" 엄마란 것이 한술 더 떠 확실히 못까지 박는다.

'무섭다. 녀석이 오면 집이 난장판이 될 게 뻔한데…'.

"야아-, 그렇다고 이렇게 급하게 데려오면 어떻게 해-. 회사일도 바쁜데…." 난감함을 표하는데도 아랑곳없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이모가 약속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아이들한테 거짓말이 얼마나 나쁜 건지는 잘 알고 있지? 그럼, 이따 봐-." 키득거리며 그냥 전화를 끊어버린다.

'어쩜.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게 아들이랑 엄마랑 어찌 저렇게 똑같을까?'

그래도 귀여운 조카에게 이모의 음식솜씨를 뽐낼 수 있는 생각에 서둘러 퇴근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백화점 식품 매장에 들렀다. 돈가스용 돼지고기를 달라고 하니 등심 부위를 준다. 집에 가서 칼등으로 살살 두들겨서 재워야 고기가 부드럽고 평평하게 튀겨진다는 말도 들었다. 밀가루.빵가루.달걀에 조카가 먹을 과자까지 양손에 사들고 낑낑거리며 집에 도착.

정육 코너 아저씨 말대로 고기를 꺼내 칼등으로 살살 두드려 빵가루까지 입혔다. 그런데 문제는 튀기기. 기름에 넣었더니 "찌지직"소리와 함께 기름이 사방으로 튄다.

'이럴 줄 알았다면 주방 바닥에 신문지라고 깔고 시작하는 건데…,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도리가 없지 뭘'하며 체념하고 있는데 더 큰일이 벌어졌다.

돈가스의 빵가루가 까맣게 타고 있는 것이다. 얼른 기름에서 건져 보니 겉만 까맣게 타고 안에 든 고기 속은 핏빛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친정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기름의 온도가 너무 높아서 그렇단다. 기름을 더 붓고 온도를 낮춰 두번째 튀기기를 시도할 무렵 아파트 복도를 종종걸음으로 달리며 "니이모오-"를 외치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장식장의 물건도 채 정리하지 못했는데, 녀석이 오면 남아나는 것이 없을 텐데….' 짧은 순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녀석이 들이닥쳐 버렸다.

현관 문을 열자 천진하게 웃는 내 귀여운 조카. 그런데 이모와의 가벼운 입맞춤도 생략한 채 돈가스 냄새가 진동하는 부엌으로 달려가며 "내 동까쓰-"를 외친다.

"잠깐만, 이모가 곧 해줄게요." 2차 도전 돈가스를 집게로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녀석 식탁 앞에 놓았다.

"잘 먹겠습니다!" 제법 예의성 멘트를 갖춘 뒤 덥석 포크로 찍어 먹기 시작한다.

"재웅아! 돈가스 맛있니?"

"언니, 애가 씹기라도 한 뒤에 물어보슈."

"아니야 엄마. 진짜로 맛있어요. 니이모-, 또 해주세요."

"그으래?, 그래 그래!!! 또 해줄 게요."

한바탕 태워먹은 사실을 모르는 조카의 판정은 '대만족'인 듯했다.

얼렁뚱땅 진행된 꼬마 손님 치르기였지만 녀석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기름 냄새가 가득 밴 머리를 보상받은 듯했다.

'녀석아! 다음번엔 아예 돼지를 통으로 잡아서 튀겨주마'.

사진=변선구 기자

***조카를 사로잡은 앙실이표 돈가스

▶재료(4인분)=돼지고기(등심) 4백g, 달걀 2개, 빵가루 1컵, 밀가루 1컵, 오이 1개, 양배추 반통, 돈가스 소스 적당량

▶부재료=맛술.다진파.다진마늘.생강즙.소금.후춧가루.식물성 식용유 적당량씩

▶만드는 법= ① 돼지고기는 기름기를 없애고 칼등으로 두드려 부드럽게 한다(그래야 튀길 때 말리지 않음). ② 맛술.다진파.다진마늘.생강즙.소금.후춧가루로 밑간을 해둔다. ③ 달걀을 깨서 알끈을 제거한 뒤 소금을 넣고 잘 풀어 놓는다. ④ 밑간한 등심에 밀가루.달걀.빵가루를 묻혀 식용유에 튀긴다. 기름의 온도는 1백60~1백70℃, 고기 속까지 익고 황금색이 나면 건져낸다. ⑤ 키친타월에 올려 기름을 제거하고 따뜻할 때 채 썬 양배추와 어슷하게 썬 오이를 곁들여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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