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어물쩍 넘기기 총리 답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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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기국회의 대정부 질의가 벌어지고 있는 의사당의 기자석에 앉아 국무총리나 장관들의 답변을 듣고 있노라면 시간의 혼돈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자가 5共 시절의 국회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문득문득 일어나기 때문이다.
黃寅性총리의 답변은 동문서답.어물쩍 넘어가기등 어쩌면 그렇게구시대의 총리들을 닮았는지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외교.안보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韓和甲(民主).具昌林(民自)의원등 여야의원 5명은 일제히 핵재처리 기술의 포기와 관련된 질문을 퍼부었다.이에 대해 黃총리는『먼저 세분 의원의 질의에 대해 답변하겠다』고 운을 뗀뒤『재처리시설의 보유는 핵개발에 대한 국제적 의구심을 자아낼 위험이 있어 현단계로서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답변했다.문제는 잠시뒤『나머지 두 분 의원질문에 답하겠다』며『핵재처리시설의 보유는…』라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앞의 답변과 똑같은 내용 의 써준 답안지를 읽어내려갔다. 黃총리는 의원들의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서는『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답변할 것이 많아서 관계장관에게 대신 답변케 하겠다』고 연거푸 구렁이 담넘어가듯 넘어가 야유를 받기도 했다. 전날의 첫 대정부질문에서는 張基旭.林采正의원(이상 民主)이보충질문등을 통해『甲을 물으면 乙로 대답한다』『동문서답에 허탈감을 느낀다』며『본회의제도를 일문일답식으로 바꾸든지 답변 누락체크제도를 도입하든지를 심각하게 고려 해야할 때 』라고 정부측의 답변 무성의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에 이르자 사회를 보던 許京萬부의장(民主)은『앞으로 4일간의 대정부질문에서 누락부분이 없도록 특별히 유념해달라』고 주의를 주기까지 했다.
『국회답변은 알맹이 없이 길게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행정부의 잘못된 버릇이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문민정부로 규정하고 개혁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총리스스로가 국회답변에서 舊態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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