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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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국의 고전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은 신선으로부터 「근두운」이라는 비법을 전수받아 72가지의 술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재주꾼이다. 그가 지닌 술법 가운데 머리카락을 몇가닥 뽑아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입으로 불어날리면 수백,수천의 똑같은 손오공으로 변해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것도 있다. 이 작품이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도 그같은 손오공의 술법들이 극히 환상적이고 상상력을 무궁무진하게 키워주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는 어린이들의 그같은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할리우드의 흥행귀재로 불리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과학의 힘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다.
그러나 소설이나 영화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과학의 힘을 빌려 똑같은 인간을 여럿 만들어내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충분히 가능한 일로 치부돼왔다. 나치 독일 전성기 때의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자기와 똑같은 인물을 여럿 남김으로써 세계제패의 야망이 대대로 이어져 나가기를 꿈꾸고 과학자들로 하여금 인간복제의 기술을 연구하도록 지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최근 그같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픽션을 가미한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이 TV를 통해 소개된 일도 있다.
아마도 과학자들로서는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기계로 만들어진 똑같은 인간이 아닌,모든 것이 똑같은 진짜 인간들을 여럿 만들어내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과학의 대단한 개가라고 할지도 모른다. 히틀러시대가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그같은 연구에 몰두해온 것도 모든 과학적 가능성의 탐구라는 측면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복제인간이 양산되는 경우 거기에 뒤따르는 문제들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종교적으로는 하늘의 섭리를 거역하는 행위임에 틀림없고,의학적으로는 「위험한 형태의 우생학」이라는 견해가 이미 제기됐다. 무엇보다 문제는 그 목적을 장기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게 되는 경우다. 첫 아이를 위해 그 다음 아이는 희생돼도 좋다는 논리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태어나기만 하면 그 순서에 관계없이 생명으로서의 존엄성을 갖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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