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표에서 얻어야 할 교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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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집권 민자당의 기류가 매우 미묘한 것 같다. 민정·공화계의 잠재된 불만이 더러 표출되기도 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김영삼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 아래 그럭저럭 단합과 안정을 보여왔으나 이번에 김종인·박철언의원 석방요구안 표결에서 30명 전후로 보이는 이탈표가 발생했다.
민정·공화계의 잠재된 불만을 생각하면 1백69명중 30명 정도의 이탈은 예상된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일도 아닌 수뢰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두 의원에 대한 표결에서 사정과 개혁이 압도적 병분이 되고 있는 이 시절 여당 의원의 그런 「반란」이 나온 것은 충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일은 일종의 「예상된 충격」이라고 볼 수 있다. 예상됐다는 점에서 그 결과를 두고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겠지만 「충격적」아라는 측면이 주는 정치적 의미를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는게 우리의 생각이다.
이번 표결결과는 얼핏 지난 71년 공화당의 이른바 「10·2항명파동」을 연상시키지만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때엔 파벌간의 정면충돌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이탈이 있었지만 이번 경우 의원들의 자의에 따른 산발적인 투표결과일 뿐이다. 민자당 지도부 역시 이탈문제를 확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수습키로 한 것은 당연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권 수뇌부로서는 이번 이탈현상의 원인과 그 정치적 의미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민자당의 계파간 알력이나 불만을 자세히 언급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민자당 내부에는 불협화음 요소가 다수 있고,개혁과 사정의 방법론 등에 대해서도 다른 목소리가 존재함을 알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문제는 이런 요소들이 민자당에서는 내연만 하고 있을뿐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토론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각종 당의 공식 회의는 겉돌기가 일쑤고,당간부들은 청와대 눈치나 살필 뿐이어서 당이 무주공산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언로가 트이지 못하고 문제가 공론화하지 않은 상태에선 의원들이 불만이 쌓이지 않을 수 없다. 석방요구안에 찬성한 상당수 의원들이 꼭 두 의원을 지지하거나 석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지시를 어겨가며 찬성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민자당이 평소에 문제나 불만을 거르고,소속의원들이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방식의 당론결정 과정을 가졌던들 국회표결에 가서야 「반란」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혁이나 주요정책도 마찬가지다. 당의 민주적 의사수렴 과정을 거쳐야 더 튼튼한 기반위에 안정적 추진이 가능해질 것이다. 민자당은 이번 표결결과에 놀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집권당의 안정과 단합을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겸허히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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