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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가장(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79년 아카데미 영화상의 작품상·감독상·주연남우상 등 주요 부문상을 휩쓴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이혼한 부부의 자식에 대한 부정과 모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혼율은 나날이 높아가고 가정의 가치관마저 서서히 붕괴돼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녀들 중심의 가족관계는 예나 이제나 불변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다. 이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이혼했거나 이혼을 준비중이던 많은 부부들이 재결합했다는 뒷얘기도 남아있다.
자녀를 갖지 않은 부부는 이혼하는 것으로 당장 남남이 되지만 자녀를 가진 부부의 경우는 이혼한 다음에도 자녀양육의 책임이라는 중요하고도 복잡한 문제가 뒤따른다. 『크레이머…』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맡았다가 어머니가 아이를 찾으려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이혼하는 부부들의 대부분은 서로 상대방에게 자녀를 떠넘기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혼한 후의 삶에서 자녀문제는 장애물이나 짐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혼한 부부가 아직 10세 안팎인 미성년 어린이들을 서로 떠맡지 않게 되면 이들은 고아 아닌 고아로서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빠진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 어린이들이 어른들 때문에 비극의 주인공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보사부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부모의 이혼·가출·복역 등으로 가장이 된 소년소녀는 7천3백여명에 달하며,이는 지난해보다 2백50명이나 늘어난 숫자라고 한다. 전체 소년소녀 가장을 1만5천명으로 추산할 때 부모의 사망으로 어쩔 수 없이 가장이 된 소년소녀와 비슷한 분포를 이룬다.
일찍이 영국의 비평가 새뮤얼 존슨이 『결혼약정에는 사회라는 제3의 당사자가 있다…. 그러므로 결혼은 부부의 동의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이혼으로 소년소녀 가장이 양산되는 오늘날의 우리 세태를 대변한다. 더구나 자신의 이익과 또다른 향락을 위해 자신들이 낳은 자녀와 장래는 아랑곳 않고 헤어지기를 일삼는 부부는 사회악의 주인공으로 불려 마땅하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결혼에서 행복을 못찾는 자는 이혼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을 음미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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