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딛고 재기 힘쓰는 위도 주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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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비운의 섬,蝟島의 새아침은 밝았다.
한차례의 폭풍우가 지나간「참사의 현장」위도에 새 여객선이 취항하고 가족과 이웃을 잃은 슬픔을 견디다 못해 떠났던 주민들이속속 귀향,다시 일손을 놀리기 시작하면서 위도는 예전의 평온을되찾고 있다.주민 58명을 한꺼번에 잃은 쓰라 린 상처를 딛고일어서려는 위도주민들의 굳은 의지는 섬구석구석에서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지난 악몽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우리아이들이 이 땅에뿌리를 깊게 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살아남은 주민들의 몫이라 생각하는구만요』위도면장 吳京南씨(58)의 말이다.
침몰사고가 난지 20일로 만 10일.숨진 주민들의 장례식을 잇따라 치르고 실종자 수색작업도 마무리단계에 접어들면서 어느새인가 주민들사이에는 서로를 돕고자 하는 기운이 크게 일고 있다.그동안 생업을 뒤로한채 생존자를 구하고 표류시신 을 거두는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던 위도주민들이 비로소 자신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이번사고로 두쌍의 친구부부를 잃은 申亨均씨(46.위도면사무소근무)는 졸지에 고아가 돼버린 이들부부 아이들의 대부(代父)를 자원하고 나섰다.위도 ~격포간 화물선인 변산농협소속 철부선을 몰던 張福來씨(47.위도면대리),멸치어장을 경영하던 李壽南씨(46)부부와 申씨는 지난 60년 나란히 위도국교를 졸업한 동기동창생들.
『십시일반이라지 않아요.수남이 아들은 이제 국민학교 3학년인데 할머니손에 맡겨진 이 애들이 먼저간 부모들을 원망하지 않도록 남은 동창들이 힘을 한데 모으자고 뜻을 모았지요』 『당시 졸업생 98명중 20명이 위도에 남아있으며 매년 두차례의 동기모임을 갖고있다』고 소개한 申씨는 『이를 위해 긴급동창회를 소집해놓고 있다』고 털어놓았다.사고당일부터 시체들이 놓여있던 위도 어민회관에는 아직 합동분향소가 차려져있 지만 이곳에서 아직까지 수색작업을 계속하고있는 어민.해경들에게 따뜻한 음료등을 제공하고 있는 새마을부녀회소속 주민들의 정성 또한 각별하다.
위도면안에서도 가장 큰피해를 본곳은 식도마을.마을 주민29명이 변을 당한데다 가을 멸치성어기를 맞아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멸치잡이 어장을 망쳤기 때문이다.예년같으면 40여가구가 가구당1천만원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있을텐데 그렇지 가 못해 시름이깊다.이 마을 林淳膺씨(65)는『가을에 잡은 멸치로 이듬해봄에이 마을 특산품인 멸치액젓을 만들어 판매해왔는데 올해는 신통찮아 막막할 뿐』이라고 말했다.
사고이후 새로 들여온 여객선(완도카페리호)운항도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다.처음 한때는 승선을 거부하는등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으나 이제는 주민들의 노여움도 어느정도 가셔 하루 두차례씩 격포~위도간을 운항하고 있다.그러나 증편운항은 실 현됐지만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운항관리사나 매표소관리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상태여서 주민들의 불만이 완전 해소된 것만은 아니다.20일에도 사고당일처럼 배안에서 표를 팔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가 나서서 돕지 않으면 큰일을 치른 위도주민들을국민들이 어떻게 보겠어요.고향에 다시 내려와 제가 해야할 일이많구만요』사고소식을 듣고 곧바로 고향인 위도로 달려와 민간잠수요원으로 참여했던 姜大暎씨(32.서울구로구시흥 동)가 위도행 여객선에 오르면서 내뱉은 이 한 말은 묵직한 무게가 실려있음을익히 확인할 수 있었다.
[蝟島=千昌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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