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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거품」 꺼지며 곳곳 “몸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처분 담보물 원금 밑돌아 속앓이/은행/토초세 납부에 「땅 대납」 문의 잦아 긴장/국세청/부동산 안팔려 중견·중소업체들 자금난/기업
우리 경제의 거품제거 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곳이 바로 부동산 시장이다. 두어해 전부터 가라앉고 있는 부동산 경기는 최근 금융실명제까지 겹쳐 좀체로 깨어날 기미가 없다.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은 땅을 경제활동의 소중한 밑천으로 취급했던 우리 사회에 여러가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갖고있는 땅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처분조차 여의치않아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은 골머리를 앓고있다. 세금을 땅으로 내겠다는 사람이 많아져 국세청도 대책마련에 나섰다. 그런가하면 부동산에 대한 직접투자가 힘들어지자 대체투자 효과를 노려 자산이 많은 알짜기업 주식에 투자자들이 몰리는 새로운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과거 땅값 급등세가 우리 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좀먹고 경쟁력 약화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면 요즘의 거품제거 과정 또한 길어질 경우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담보를 대출의 제1조건으로 삼아온 은행들이 최근 담보로 잡은 부동산에 몰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대출해준 기업이 부도나면 담보부동산을 처분해 돈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경매를 부쳐도 유찰되기 일쑤인데다 값이 원금을 밑도는 경우가 속출하는 것.
현재 서울민사지법과 서부지원에서 경매가 진행중인 은행담보 부동산 1백76건중 20%가량이 대출원금도 못건지는 부실담보물로 집계되는 등 처분이 곤란한 부동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담보관리 담당자는 『전에는 담보부동산을 대개 2∼3차례 경매하면 경락되곤 했으나 실명제 실명제 실시이후에는 감정가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지는 4차 경매까지 가도 경락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자체적으로 부동산 매매센터를 운영하고 매물정보지를 만들어 영업점에 돌려도 거의 팔리지않는다』고 소개했다.
은행들은 이에따라 부동산 담보를 잡을때 되도록 값을 짜게 매기는 한편 현장조사를 나가는 등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정치인이 소유주고 부동산도 많은 봉명산업 같은 기업은 예전 같으면 은행에서 흔히 구제해주곤 했으나 이번에 다소 야박(?)할 정도로 부도처리한 것도 은행들의 바뀐 관리태도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달의 토지초과이득세 납부를 앞두고 세금을 땅으로 물납하는 방법을 문의해오는 전화가 밀려들고 있어 국세청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세금을 땅으로 받으면 처분에 많은 시간과 작업이 필요해 당장 부족한 세수를 메워야 할 국세청에서도 달가울리 없기 때문. 게다가 이웃 일본 국세청은 물납받은 부동산의 가격폭락으로 지난해에만 1조엔이상 세수손실을 본 것으로 분석돼 온통 비상이 걸려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국세청은 앞으로 물납신청이 들어오면 신청자의 자금력 등을 최대한 까다롭게 따져 되도록이면 돈으로 내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부동산 경기침체와 매매거래가 부진해지면서 부동산에 자금이 묶인 업체들이 필요자금을 적기에 조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경우도 늘고있다.
이같은 사례는 90년 5·8부동산조치로 보유부동산을 처분해야 했던 30대 그룹 등 대기업들보다 특히 중견·중소기업들의 경우에 더욱 심하다.
중견의류업체 논노는 지난해 서울 서초동 본사,경기도 광주의 물류센터 등 보유부동산이 3천억원대에 이르렀으나 극심한 자금난 속에서 부동산 매각을 통한 자구책이 여의치 못해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현재 법정관리중인 중소업체 낫소도 판매부진속에 부천공장의 부지를 매각하는 방법을 통해 자금조달을 모색했으나 매입자가 없어 지난해말 부도를 낸 경우다.
○…최근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 어려워짐에 따라 증시에서는 부동산투자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자산가치우량주와 M&A(기업매수 합병) 관련주들이 인기를 끌고있어 대조를 보이고 있다.
비교적 부동산 보유가 많은 목재·비철금속·섬유업종 등의 저PBR(주산 순자산비율) 주들에 투자자들이 몰려 최근 1주일동안 주가가 최고 15%이상 뛰어오르는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이재훈·박승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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