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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소실된 금강산 신계사, 南北 손잡고 일으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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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바다 위를 떠돌며 이름난 곳 찾아다니다/산속 좋은 경치 찾기 처음/한가히 찾는 곳곳마다 아름다운 흥취/덧없는 세상 한번 스침에 산수로 즐기리."

조선 후기 학자 송환기(1797~1860)가 남긴 '입신계사(入神溪寺)'다. 금강산 신계사의 수려한 정경이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1951년 6.25 전쟁 중 미군의 공습으로 3층 석탑을 제외한 사찰 전체가 소실됐던 신계사의 복원 작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 13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올해 조계종은 북한 조선불교연맹과 신계사 복원에 참여한다"며 "복원에 필요한 70억원의 예산을 통일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조계종 사회부장 미산 스님도 12일 "신계사 복원을 올 상반기부터 본격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남북한 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한 신계사 시굴(試掘) 조사 보고서가 나와 주목된다. 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단장 탁연 스님)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7일간 신계사 대웅전 터.석탑 주변 등을 조사한 결과를 내놓았다. 복원의 밑그림에 해당하는 '1차 재료'가 완성된 셈이다.

이번 조사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문화재 관련 남북 학자가 공동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천태종이 복원을 지원하고 있는 개성 영통사의 경우 일본 학자들이 발굴 작업에 참여했었다. 식량.물품 지원 등에 국한됐던 불교계 남북교류가 본격 학술 차원에 진입한 것이다. 발굴에 참여한 정재훈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는 "남북이 공동으로 고증적 차원에서 벌이는 첫 문화재 복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고 말했다.

신라 보운조사가 519년 창건한 신계사는 고려.조선시대에 걸쳐 몇차례 중건된 금강산 4대 명찰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고(故)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의 유분이 이곳에 뿌려지기도 했다.

조사단은 신계사 대웅전터를 주로 발굴했다. 시굴인데도 의외로 성과가 컸다.

토층 조사를 통해 신라부터 조선에 이르는 신계사의 중수(重修)과정을 알아낸 것이다. 현존하는 초석(礎石)으로 볼 때 지금의 대웅전 터는 창건 당시의 규모가 아니며 1887년 중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 기와.토기.북장신구.나발.청동보살 수인(불교에서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모양) 조각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대웅전 터에선 물고기 문양이 새겨진 기와가 나왔다. 기존의 한국 기와에서 보기 드문 형태로, 물고기를 내몰고 가람을 세웠다는 신계사의 창건 설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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