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도시(선진국 무엇이 다른가: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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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 기초부터 다시 쌓자/차타면 멀고 전철론 가깝다/동경행도로 일부러 좁게 건설
지금도 지방 영주가 살고있을 듯한 장원식 대구옥. 어른파로 한 아름은 됨직한 단독주택가 가로수들. 꽃 모판 같은 계단식 아파트. 신도시같지 않는 신도시.
멀리 후지산이 바라보이는 일본 동경도 부근 다마신도시를 찾는 취재팀은 의아심을 감출 수 없었다. 차라리 고도로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이곳이 30만 인구를 목표로 짓고 있는 다마 신도시다. 「회색과 콘크리트 냄새가 없는 도시」­.
동경도 다마 도시정비본부 홍보담당자 스즈키 히데오씨가 정의하는 다마 신도시의 건설 개념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된 주거공간」을 목표로 한 다마 신도시 건설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0년대초 일본에 불어닥친 산업화·도시화의 물결은 동경에도 심각한 주택난을 야기시켰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땅값에 못견뎌 빠져나간 이주민들에 의해 도시 외곽은 무질서한 개발이 성행됐다.
동경도가 신도기 개발계획을 세우게 된 것은 65년. 난개발 방지와 주거환경이 좋은 주택의 대량공급이 목적이었다. 이처럼 분당·일산 등 우리의 신도와 같은 필요성에 의해 출발한 다마 신도시가 분당 등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 전체 및 지역별 개념설정 등 구도을 짜는데만 4년여가 걸렸다. 당초 계획은 2000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2∼3년 늦어질지도 모르겠다.』
시작부터 말을 잃게한다. 분당의 경우 신도시 조성계획 발표 8개월만에 분양 시작,예정 공사기간 3년8개월. 「긴 호흡」을 갖고 시작한 건설은 도시구석 구석까지 조화와 균형을 가능케했다. 『도시전체를 수십개의 구획으로 나눠 지형 특성에 맞춰 주택 종류와 모양을 결정토록 했다』는 스즈키씨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틀로 찍어낸 듯한」 우리식의 단지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산자락에 파묻혀 있는 1,2층짜리 단독주택,구릉지 숲속의 3층 타운,갖가지 형태와 높낮이의 아파트 등 원래 있던 「마을」의 집합처럼 보일 뿐이다. 더욱 이색적인 것은 새 집들 틈속에 간혹 끼여있는 목조 구옥들. 끝까지 땅 팔기를 거부한 원주민들의 집들이다. 「설득은 하되 강제 집행은 절대 안한다」는 행정의 융통성이 오히려 조화를 더하게 해준 것이다.
◎버스·전철·학교·병원 10분내 연결/계획에만 4년·마무리까지 35년
다마 신도시의 도로 등 도시기반시설은 완벽에 가까운데 비해 동경과의 지역간 도로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전철을 타면 35분거리,그러나 차량을 이용하면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신도시가 또 다른 동경 교통체증의 혹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중교통위주의 원칙을 적용시킨 때문이다.
신도시와 동경 신주쿠를 연결시킨 게이오 사카미하라선과 오다큐 다마선은 본격 입주가 시작된 73,74년 모두 마무리됐다. 그래서 신도시∼동경간 출·퇴근자의 지하철 이용률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80% 내외로 큰 차이가 없다. 지하철 분당선의 경우 당초 개통 목표는 94년. 그러나 입주 예정 인원의 3분의 1이 이미 들어찬 현재까지 완공 시기마저 잡지 못하고 있다.
「베드 타운」인 분당 등과 비교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복합 기능의 구비와 도시 기능의 효율적인 분산화다.
우선 전체지역은 인구 1만2천명(3천가구),넓이 30만평 정도를 기준으로 하는 21개 주구로 나뉜다. 주구마다 유치원·초중교·진료소·도서관·파출소 등이 있으며 주구 서너개가 합친 지구에는 은행·종합병원·각종 전문점 등이 구비된 부도심이 형성되어있다. 지구를 합한 전체 규모의 시설로는 대학·백화점·종합운동장 등과 각종 시단위 행정기관 등이다. 이처럼 각 공공·편의시설들이 세분·분산화돼있어 주민들의 「생활이동」 거리는 지극히 짧은 편이다.
『주민들의 보행로와 차도는 건물의 1,2층처럼 분리돼 「보행자 또는 자전거 천국」이 보장된다. 그러나 버스·전철 또는 병원·학교 등 모든 곳이 걸어서 10분안에 연결된다.』 무라카미 준이치 건설성 토지이용조정관이 설명하는 신도시 설계상의 「10분내 근접 원칙」이다.
도시의 복합기능화는 곧 그 도시의 자생력을 의미한다. 병풍처럼 아파트군만 들어찬 우리와는 달리 다마 신도시내 곳곳에는 대기업·은행 등의 사무실 들이 많이 눈에 띈다. 아사히생명·미쓰비시 은행 컴퓨터센터·도쿄 해상보험 지사 50개 정도 대기업들의 지점·지사·연수소·연구소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대기업들의 유치도 물론 「신도시 마스터플랜」의 일환이다. 『생산기능이 없는 도시는 균형있는 발전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의 소산이다.
대기업들 외에도 91년 문을 연 동경 도립대학·다마 종합정신보건센터·기타 대형 유통센터 등 생활에 필요한 기반시설들이 모두 갖춰져 다마시는 동경도의 「혹」이 아닐 명실상부한 독립도시로서 「홀로서기」가 가능하게 됐다. 대단위 계획도시를 만들면서 소프트웨어를 부실하게해 베드타운만을 양성하고 있는 우리와 대조되는 또 하나의 특징이기도 하다.
일반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다마 신도시의 인기는 대단하다. 임대·분양이 반반 정도씩인 이곳의 일부 아파트는 경쟁률이 최고 4천대 1까지 기록한 전례도 있다. 수요가 폭벌적이다 보니 투기가 개입될 여지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10년간 전매가 금지되고 기한내 팔 경우 도지사의 허가를 얻어야 할 만큼 관리가 엄격해 실수요자가 아닌 입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마 신도시 건설과정에서 엿보이는 「노하우」 들은 우리의 실정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이상형들일까.
『한국의 도시건설이 하도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주목,몇년전 시찰단을 파견한 적이 있다. 그러나 뭐라하 할까…. 이를테면 「국민성」의 차이 등을 느끼고 그대로 돌아왔다.』 정중한듯 하지만 취재팀의 가슴을 찌르는 말이다. 20∼30년에 걸친 장기계획,도로 등의 사전 건설은 넉넉지 못한 나라 살림의 형편상 그러려니 덮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후손들의 취향 등이 바뀔 것을 감안,개발 유보지를 남겨두는 영국 밀트케인지 신도시나 아파트 1층 입주자에게는 2∼3평 규모의 별채 건물을 덧붙여줘 저층 입주의 불이익을 보상해주면서 건물모양의 변화를 꾀해보는 다마의 「플라스 원」 개념,나아가 신도시의 30년뒤를 바라보며 50m너비의 도로부지를 확보해 놓는 「마음가짐」의 차이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될까.
◎쓰레기위의 신전/「파르테논 다마」/인공언덕에 조형미 빼어난 복합건물/곳곳엔 공사폐기물로 쌓은 녹지동산
「파르테논 다마」. 이름 그대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하는,빼어난 조형미와 넓은 광장이 인상적인 5층 높이의 복합건물이다.
다마 신도시의 중심부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파르테논 다마」는 전철역과 넓은 광장으로 연결돼 각종 상가·휴식공간 등이 함께 어우러진 다마의 명소로 꼽히고 있다.
이같은 「신전」이 쓰레기더미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비밀(?)을 아는 사람은 많지않다. 즉 신전의 기반지인 20여m 높이의 구릉지는 신도시 공사현장에서 나온 토사·콘크리트 분쇄물 및 각종 폐자재 등을 쌓아 인공 언덕을 조성한 것이다.
신도시 관계자들은 수만t이나 되는 부산물 처리에 골치를 앓다가 인공 동산의 아이디어를 짜내 막대한 비용의 절감은 물론 운치있는 휴식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예는 신도시내 여러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쓰루마키 동공원의 경우도 건설 자재·토사 등을 모아 쌓은 반경 50∼150m,높이 30m 규모의 녹지동산이다.
이같은 인공 구릉지들은 특히 계획도시의 특성상 평평한 곳이 많아 단조로울 수 밖에 없는 단점을 보완,지형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과 함께 주택·아파트들의 자연과의 조화미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기왕 이 언덕이나 숲 등도 「깨끗이」 밀어내고 콘크리트를 덮기 일쑤인 우리의 시공자들이 한번쯤 참고해 볼만한 아이디어가 아닐까.<김용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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