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장갑차 뺏어 시내질주/예측불허… 유혈충돌 모스크바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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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옐친,특수부대 동원 통신사 탈환/부상자들 속출 병원마다 수라장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최고회의(의회) 해산을 명령하는 포고령을 발표한 이래 옐친과 최고회의 사이에 극한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러시아 보수파를 지지하는 시위대 1만여명이 3일 옐친측에 대한 무장공격에 나서 러시아 정국이 극도의 혼미상태에 빠져들었다.
○수비대 역부족
○…시위대는 이날 오후 2시쯤 최고회의 의사당 주변 도로에 모이기 시작,3시쯤 1만여명이 의사당을 봉쇄한 경찰병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돌파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경찰병력을 무차별 공격했으며 수가 부족한 경찰은 공포를 쏘며 시위대에 대항했으나 곧 무너졌다. 이곳에선 경찰관 2명 등 4명이 숨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시위대가 의사당을 둘러싸자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 의장이 시위대 앞에 나타나 『오늘 안으로 크렘린궁을 접수하라』고 촉구했으며 최고회의가 임명한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대통령은 옐친 축출을 선동했다.
시위대들은 곧 최고회의에서 2백여m 떨어진 모스크바 시청으로 몰려가 청사를 점거하고 수비병력을 무장해제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자동화기와 총류탄 발사기 등으로 무장한 일부가 구 소련 전역에 TV방송을 송신하는 오스탄키노 방송국을 공격,오스칸키노 방송국 경비병력과 11시간 가까이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으며 장갑차를 동원한 정부군측이 4일 오전 2시쯤 시위대들의 공격을 물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송신 중단
이타르­타스통신과 인테르팍스통신 등 주요 통신들도 한때 시위대에 점거돼 뉴스 송신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들 통신사는 시위대 난입 직후 옐친측 특수부대가 습격,탈환했다.
○…이날 무장시위대들은 진압경찰로부터 탈취한 장갑차 3,4대를 타고 붉은기를 휘날리며 시내를 질주했다.
모스크바시내는 이날 밤새도록 차량통행이 금지됐으며 병원구급차·경찰차·소방차 등이 끊임없이 사이렌을 울리며 시내쪽으로 이동했다.
○…친공산 시위대가 최고회의 건물로 난입한지 3시간만인 3일 오후 6시쯤 비상사태가 선포되자 40여대의 장갑차량이 모스크바 중심부로 진입,국방부와 크렘린궁 부근의 중요 전략지점에 포진.
이와함께 러시아지역 군구사령관들은 보수파 시위대의 폭동을 진압하라고 지시한 옐친 대통령을 지지키로 결정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정통한 소식통은 러시아 최정예부대인 내무부산하 제르진스키사단이 엘친 지지파와 반대파로 양분됐다고 전해 군내부갈등도 노출.
정부측은 정부군이 최고회의를 점거중인 의원들과 시위대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3일 오후 8시45분 최고회의 건물에 다시 전력공급을 중단했다.
○의사 비상호출
○…모스크바시내의 주요 병원들은 폭동발생이후 물밀듯이 몰려드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부산한 모습.
시위현장에서 부상자들을 실어나르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스크리포소프스키 병원에서 근무하는 한외과의사는 『거의 모든 의사들이 비상 호출됐다』고 말하고 『부상자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옐친 대통령은 비상사태 선포직후 행한 TV연설에서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할 것을 촉구하면서 『우린 승리한다』고 자신있게 선언.
옐친 대통령은 『우리는 모스크바 시내의 질서를 회복하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있다』고 강조하고 『바로 오늘(3일) 러시아와 러시아 어린이들의 장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
최고회의 건물내에 머무르고 있는 알렉산드르 루츠코이는 정부군의 반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3일밤 성명을 발표,4일 오전 7시(한국시간 오후 1시)까지 의사당내에서 층계간 이동을 금지하는 일종의 「통행금지」조치를 선포.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옐친의 비상사태 선포가 발표된 직후 모스크바시내에서 모든 병력을 철수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한 포고령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
○…큰 길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 최고회의 건물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모스크바시내의 미국대사관에 근무하는 미국외교관들은 창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폐쇄회로 TV를 통해서만 사태진전을 관망하는 모습.
○한인학교 휴교
○…모스크바의 한국대사관은 사태가 예측할 수 없는 유혈충돌 상황으로 전개됨에 따라 모스크바 한국인학교에 대해 4,5일 이틀간 휴교조치를 내렸다. 대사관측은 이외함께 모스크바주재 한국교민들이 당분간 시내에 나오지 말고 안전에 유의하도록 권고.<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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