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초만에 유독가스 술술…'사람 잡을' 국민 방독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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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가 불량품인 것으로 밝혀진 S사의 방독면.[연합]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4일 정부가 국민에게 지급한 국민방독면 중 상당수가 불량품인 것으로 드러나 공급업체와 관련 공무원을 상대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제작업체가 불량품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정치권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정황도 포착했다.

경찰은 방독면 제조업체 S사가 2001년 1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50여억원 상당의 국민방독면 17만개를 행정자치부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제조단가를 낮추기 위해 값싼 흡습제(필터)를 사용, 성능을 대폭 떨어뜨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국제표준규격 기준에 맞춘 정상제품은 일산화탄소에 노출됐을 때 3분이 지나야 가스 농도가 유해기준(3백50ppm)에 도달하지만 문제의 S사 제품들은 불과 23초 만에 기준치를 넘어섰다.

경찰은 "S사 측이 한국화학시험연구원의 성능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연구원 관계자 몰래 검사기기에 구멍을 뚫고 공기를 주입시켜 정화능력을 높이는 수법을 썼다"고 밝혔다.

S사는 지난해 11월부터 불량품에 대해 리콜을 실시하고 있다.

경찰은 업체 측으로부터 "국정감사에서 불량품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무마하기 위해 지난해 9월 국회 행자위 모 의원실의 보좌관에게 3천만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이 돈의 성격에 대해 조사 중이다.

또 경찰은 S사 등 3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 이 업체가 수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납품과정에서 행자부.조달청.경찰청 등 관련 공무원들에게 금품로비를 벌인 단서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S사는 "문제가 됐던 제품들은 당초 출고시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행자부가 두건 부분을 보완하라고 요구해 두차례 밀봉포장을 뜯었다가 재포장하는 과정에서 습기에 노출돼 정화통의 성능이 떨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방독면 보급사업=국내외에서 대형사고가 잇따르자 98년 정부가 내놓은 재해 예방대책의 하나로 2007년까지 총 8백65억원을 투입해 방독면 2천2백53만개(전체 국민 48%선)를 보급한다는 것. S사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80만개를 납품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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