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線' 달라지나] 연두회견 요지·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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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14일 연두기자회견은 경제.민생을 강조한 기조 때문인 듯 시종 차분한 어조로 진행됐다. 평소 '애드립'을 즐겨 쓰던 盧대통령은 준비된 원고를 거의 그대로 읽었다. 그러나 "직접 만나면 아무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두루뭉술하게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못하겠다고 한다"고 불만을 토로할 때는 자신이 밝힌 경제 원칙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목청을 높였다.

盧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지난 수년간 생산성 향상을 훨씬 웃도는 임금상승이 지속돼 왔다"며 "근로자들은 올 한해만이라도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기업에도 "스스로 경영 투명성을 높여 근로자에게 믿음을 주고 진지하게 노조를 설득하는 노력을 보여 달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문희상 비서실장(왼쪽에서 여섯째)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진이 노무현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신동연 기자]

◇정치

-재신임과 총선 연계하나.

"국민투표로 했으면 했는데 어렵게 됐다. 총선 연계는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 그러나 야당이 이미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고 법적 시비도 일고 있어 설사 내가 생각이 있더라도 연계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 점에 관해선 아직 아무 결정이 없다. 하지만 재신임은 약속이므로 실천 방안을 계속 고심하겠다. 단 특검 조사가 마무리되거나 윤곽이 드러났을 때 (재신임)시기와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용인 땅 매매를 직접 지시했다는데.

"이기명 선생의 땅을 내가 요청해 강금원 회장이 매수했다는 것은 지난해 직접 밝힌 바 있다. 호의적 거래인 것은 사실이나 정치자금이나 불법 선거자금 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통일.외교

-청와대가 외교부 직원을 조사하는 원인은.

"대통령은 자신의 외교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당선됐으므로 그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 대미(對美) 외교 과정에서 대통령의 정책 방향을 바꾸려는 의도로 보이거나 세부 정책에 영향을 주려는 듯한 (공직자들의) 정보 유출이 있었다. 몇몇은 대통령의 외교노선에 이의를 제기하고 불쾌한 감정을 모욕적 언사로 표현하는 수준까지 왔다. 얼마나 강하게 징계해 보복하느냐, 본때를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책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인사 조치할 필요가 있다."

-미 방북단에 대한 북한의 핵 시설 공개를 어떻게 보나.

"설사 북한이 과시용으로 허용했더라도 목적 자체는 문제를 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어떤 결과든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도, 갈등의 빌미로 삼을 수도 있는 만큼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

-독도 우표 발행을 일본이 문제삼는데.

"해양법 학자가 이렇게 표현했더라. '내 아내에 대해 자꾸 내 아내라고 강조할 필요가 있나. 내 아내는 그냥 아무 말 안 해도 내 아내다'. 한국 영토라는 점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약한 게 아니라 실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경제

-정치상황 등 불확실성이 투자를 막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불확실성이 뭔지 묻고 싶다. (취임 후)연초부터 기술혁신, 시장혁신, 대화와 타협 등 큰 틀을 분명히 해 왔다. 노사 문제도 시간이 걸릴 뿐 불확실한 건 없다. 정치상황은 분위기일 뿐이다. 총선도 기업에 부담을 주는 일이나 돈이 풀릴 것이란 기대가 없을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역시 돈이 풀려 재미봤다는 갈비집도 없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노사 관계 정립 방안은.

"1980년대 이전엔 기업이 공권력이나 탄압으로 (분규를) 해결하던 상황에서 활동해 와 대화나 투명경영으로 해결할 생각을 덜 가질 수 있었다. 노동자 역시 당시엔 법에 허용된 노조를 만들면서도 숨었어야 해 정부나 재계를 불신할 수 있다. 역사와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공권력을 단호히 투입하고 처벌하는 것만으로 신뢰가 축적되리라고 봐선 문제를 풀 수 없다. 대화나 설득과 더불어 법과 원칙을 분명히 세워가며 대응해야 한다."

김성탁 기자<sunty@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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