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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났던 밴드들 "홍대로 컴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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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갔던 밴드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노래방과 술집.식당.카페 등이 빽빽이 포진한 서울 홍익대학교 부근. 요란하고 사치스런 대로변을 돌아 골목길을 찾아 들면 구석진 모퉁이 지하 한켠에 창고처럼 허름하게, 수줍은 듯 소박하게 간판을 내걸고 있는 곳들이 여러 있다. 이른바 '홍대 앞 클럽'들이다.

언제부턴가 '홍대 클럽'하면 댄스를 먼저 떠올리게 됐지만 몇년 전만 해도 이들의 본령은 춤이 아니었다. 록에 대한 열정과 재능은 가졌으되 아직 방송국 PD의 눈에 띄지도 못하고, 드넓은 공연장에 설 형편도 되지 못했던 아마추어(인디) 밴드들이 기껏해야 1백, 2백명의 매니어들 앞에서 자신의 음악적 정열을 불태우던 공간이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귀밝은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 곳 언더 그라운드에도 빛이 들기 시작했다. 라이브 클럽을 통해 스타들이 탄생한 것이다. 크라잉넛.자우림.체리필터 등은 홍대 클럽이 배출한 '히트 상품'이었고 이곳은 주류 대중 음악계에 신선한 피를 공급하는 동맥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IMF의 찬바람은 절정을 구가하던 라이브 클럽들을 뿌리째 흔들어 버렸다. 채산을 맞추지 못한 클럽들이 하나둘 간판을 내리거나, DJ가 틀어주는 음악에 맞춰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라이브 클럽 성격을 유지한 곳은 한두 곳에 불과했다.

2004년, 지금 이곳에 새싹이 움트려 하고 있다. 한층 새로워진 라이브 클럽들이 지난해말부터 잇따라 문을 열면서 '라이브의 메카'로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전인권과 한영애도 무대에 올라=과거 홍대 라이브 클럽의 대표격인 드럭(Drug)과 자우림을 발굴했던 블루 데빌(Blue Devil)이 합병해 새로 탄생한 DGBD. 일주일 중 나흘이나 라이브 무대가 열린다. 특히 지난 11일은 마치 대학로 소극장을 연상시키듯 차분한 분위기였다.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포크 음악을 노래하는 듀오 재주소년. 홍대 라이브 클럽하면 당연히 록음악 계열의 인디 밴드를 떠올리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DGBD를 운영하고 있는 이현숙씨는 "특정 장르나 언더그라운드 음악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전인권씨나 한영애씨 등 유명 가수들도 이 무대에 섰다. 실력있는 뮤지션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인디 밴드의 전유물과도 같았던 이곳이 문호를 활짝 개방한 셈이다.

스탠딩 공연에 쿵쿵 뛰며, 머리를 흔들어대는 헤드뱅잉이 넘쳐나던 예전 관객석의 풍경과도 크게 달랐다. 이날 2백여명의 관객들은 2층까지 빼곡이 자리를 차고 앉은 채 음유시인과도 같은 재주소년의 노랫말을 하나씩 따라 불렀다.

◇사운드 업그레이드!=최고급 공연장에 뒤지지 않는 스피커와 앰프, 우퍼 등 향상된 음향 시설이 갖춰져 업그레이드 된 소리를 공급하고 있는 것도 과거와는 차별화된 점이다. 재주소년은 "어쿠스틱 음악을 하는 만큼 섬세한 소리가 뽑아져 나와야 우리 음악이 살 수 있다. 기대 이상이다"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같은 시간 홍대 전철역 부근에 위치한 사운드 홀릭이란 라이브 클럽에서도 허클베리핀.뷰렛.에브리싱글데이 등 인디 밴드들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지난해 11월에 오픈한 이곳은 아예 음향 전문가들로 짜여진 테크니션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뮤지션들이 연주와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타 튜닝에서 앰프톤을 조정하는 일까지 연주 외적인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MP3로는 성에 안 차=홍대 라이브 클럽이 새롭게 활기를 띠는 데는 인디 문화의 저변이 확대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브릿팝이나 모던록 등으로 인디 밴드의 음악적 색깔이 넓어진 것과 함께 이 밴드들이 10여년 꾸준히 활동하면서 소비층도 두텁게 형성된 것이다.

MP3의 광범위한 유포로 음악을 듣는 방식이 달라진 점도 한 요인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성기완씨는 "MP3는 본래의 원음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소리에 갈증을 느낀 수요자들이 음반을 구입하기보다 좀더 적극적으로 공연장을 찾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음악을 듣는 문화가 MP3를 다운받거나 아예 라이브 무대를 찾는 양극화 현상을 빚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사진 설명 전문>
팔을 들고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홍대 라이브 클럽의 전부는 아니다. 고요한 소리에 흠뻑 빠져 넋을 놓기도 한다. 사진은 지난 11일 문을 연 라이브 클럽 DGBD에서 열린 한 가수의 공연 모습.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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