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이기주의 「갈등」 씻는가 했더니…/「한·약합의안」 물거품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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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일선약사들 「한약사제」 반발/일부약국 무기휴업 강행/경실련,약사회에 합의이행 촉구
한·약분쟁 해결을 위해 대한약사회와 대한한의사협회가 가까스로 이루어낸 경실련중재안 수용합의가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21일 밤 대한한의사협회는 시·도지부장 및 중앙이사 30여명이 참석한 대책회의에서 일부 시·도지부의 반발로 허창회회장에 대한 불신임투표까지 실시,부결됨에 따라 경실련의 중재안을 수용키로 최종 결정했으나 대한약사회가 한약사제도에 대한 일선 약사들의 강한 반발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
이에대해 경실련 서경석 사무총장은 『한약분쟁조정위원회와 잠정합의안에 대해 추인을 받았다고 했던 약사회가 이처럼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강도높게 비판한뒤 합의안 서명을 거듭 촉구했다.
경실련은 24일 사회 각계 원로들과 함께 약사회를 항의방문한뒤 약사회가 서명을 놓고 진통을 거듭할 경우 이미 마련된 합의안을 약사법개정안에 반영해줄 것을 보사부에 요구키로 했다.
대한약사회는 특히 권경곤 전 회장의 휴업철회 결정에도 불구하고 경북·대구 약사회와 경기도 고양시지회가 당초 예정대로 22일부터 무기휴업을 강행하는 등 반발 움직임이 확산될 조짐이어서 내부진통이 심각한 상태다.
이에 따라 경실련 중재합의안에 대한 양 단체 대표의 서명이 지연돼 보사부에 제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약사회의 동요가 계속될 경우 합의 자체가 무효화될 가능성도 적지않다.
회장이 사퇴한 약사회 집행부측은 합의안에 대해 『실질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약국휴업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난여론을 면치 못하게 됐다.
대한약사회는 이와 관련,22일 낮 12시 상임이사회를 열어 중재합의안 서명문제를 논의할 방침이나 일부지역의 집단반발로 27일로 예정된 임시대의원총회로 합의안 추인여부를 미룰 가능성이 높다.
대구와 경북약사회는 21일 밤 긴급총회를 열어 합의안중 특히 한약사제도의 도입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투표로 무기휴업 강행을 결정했다.
대구시내 1백여개 약국들은 이에따라 22일 일제히 폐문했으며 경북지역 8백25개 약국도 포항·김천·영주·상주·점촌 등 일부지역의 당번약국이 문을 열었을 뿐 대부분 전면휴업에 들어가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게됐다.
이들 지역의 약국들이 휴업하자 대구시와 경북도는 보건소가 비상근무에 들어가 대구시내 가두 21곳에 임시의약품 판매소를 설치하는 한편 병·의원 진료시간을 평소보다 2시간씩 연장하도록 의사협회에 요청했다.
이들 지역의 약국이 무기휴업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21일 밤부터 각 약국에는 상비약을 구입하려는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 혼란을 빚었다.
박정숙씨(42·여·대구시 달서구 성당동)는 『시민을 볼모로 삼아 자신들이 이익을 챙기려는 행동에 분노를 느낀다』며 『국민보건을 생각,서로 양보해 합의했다고 발표한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이를 뒤집는 행동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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