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이후/나라살림 불균형 심했다/사회간접자본 투자 제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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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해집단 소득보상 지출은 크게 늘어/조세연구원 심포지엄서 지적
80년대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라살림은 각 이해집단의 정치논리에 밀려 제구실을 하지못했다는 실증적인 분석이 나왔다.
나라가 「시장에서의 값」 대신에 살림을 헐어쓰고 각 이해집단의 소득을 보상해주는,이른바 「민주화 코스트(비용)」를 지불하느라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본래의 구실을 등한히 했다는 것이다.
17일 조세연구원이 개원 1주년을 맞아 연 심포지엄(한국경제의 새로운 방향정립을 위한 재정·금융정책)에서 최광 외국어대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80년 이후 국가예산의 사회간접자본 지원은 그 비중이 게걸음 치거나 줄어든 반면 소득보상적 씀씀이의 비중은 크게 늘어났다.
90년의 경우 「당대」의 소득보상을 위해 쓴 나라 살림은 국민총생산(GNP)의 10.5%에 이른 반면,「후세」를 위해 사회간접자본에 들인 비용은 1.6%에 지나지 않는 심한 불균형을 보였던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80년대식 상황」에 따라 이른바 소득이전적 재정지출은 81년의 1천5백15억원에서 92년에는 3조20억원으로 불어났다.
특히 추곡·석탄·철도·통신요금 등을 그때 그때 「시장에서의 값」으로 제대로 쳐주지 못하고 대신 「세금」으로 때운 가격보상적 지원도 80년의 7천1백73억원에서 92년에는 2조1천9백1억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경제기획원의 내부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최 교수는 『최근 경제가 성장의 잠재력을 크게 밑돌면서 바둥대고 있고 사회간접자본의 부족으로 산업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명제 실시와 관련,국공채 발행으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면 성장이 촉진되고 세수도 늘어 균형재정이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제시했다.
한편 함께 발표에 나선 조윤제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명제가 실시된 만큼,금리자유화를 앞당기고 「하후상박」의 임금체계를 고쳐 신입사원과 고급간부의 임금격차를 「눈에 보이게」 벌려 놓아 일을 열심히 하려는 욕구를 키우는 등의 전반적인 「가격개편」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김수길·길진현기자>
◎심포지엄 주제발표 요지/예산·조세·국고기능 관장부처 일원화해야/금리자유화 당기고 하후상박 임금 바꿔야
◇예산(재정)정책의 기본과제와 방향(최광수교수)=재정을 알고 판독할 수 있는 사람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슘페터가 지적했지만 우리는 지금 정부와 국민 모두가 재정개혁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뒷전인채 이익집단의 이해가 전면에 부각되는 「구조적 재정위기」에 처해있다.
이같은 사실을 일반국민은 물론 심지어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정은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데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은 그 규모의 축소를 바라고 있다.
이는 나라살림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국민이 갖고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간부문 못지않게 정부부문의 생산성 향성은 국가운영에 필요불가결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첫째로 정부조직이 개편되어야 한다.
6공 초기의 행정개혁위원회는 행정개혁을 이루지 못했으며,신정부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를 두고있다.
선진사회나 개방경제 등과 관련된 정부조직은 확대 개편되어야 하나 산업구조 조정과 사회변화에 따라 행정수요가 줄어드는 조직은 과감히 줄여야 한다.
특히 예산정책과 조세정책을 각각 다른 부처가 맡고있어 재정정책의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있으므로 예산·조세·국고기능을 하나의 부처가 관장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계속되어 왔고 우리나라는 어려움을 극복해 잘 발전해 왔으니까 사회간접자본 문제도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면에서도 정부가 입법예고한 공공자금 관리기금법의 제정은 불가피하다.
요즈음 실명제의 정착을 두고 세무행정의 강화가 뒷걸음치고 있는데 세부담의 형평을 위해서는 엄격한 세정이 필요하다.
또 재정운용에 있어 국공채 발행을 통한 재원조달의 논의는 지나치게 금기시 되어온 경향이 있다.
재정적자가 반드시 성장의 장애요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인식되어야 하고 국공채 발행으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면 성장이 촉진되고 세금이 더 걷혀 오히려 균형재정이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실명제 이후의 금융정책 방향(조윤제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금리자유화를 앞당기고 하후상박의 임금구조를 바꿔야 한다.
금융산업을 효율화시켜 공금융이 유망중소기업에 대해 스스로 금융지원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우리경제의 효율성을 높여가야 한다.
실명제가 없던 상황에서 임금조정이 있을때마다 하후상박의 원칙이 강조되어 왔지만 동시에 고급간부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 몇배의 소득으로 보상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실명제 실시와 함께 열심히 일하고 직위가 상승해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임금구조」가 마련돼야 하며 임금외에도 사회전반의 가격구조가 과감하게 재조정돼야 한다.
경기위축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곤란하다. 또 금융자유화에 거스르는 대책을 내놓아서도 안된다. 예컨대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제한 자금방출을 통해 지원한다는 논리가 나와서는 안되며 정부가 은행들에 신용이 없는 중소기업들을 지원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문제다. 비용없는 개혁은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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