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세계 경제 '서브프라임 충격'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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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가장 약한 곳에서 터지게 마련이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충격에 세계 금융시장이 떨고 있다.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으면 서브프라임부터 치명상을 받게 된다. 신용이 낮은 사람에게 주택을 담보로 상대적 고금리로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문제의 영향이 억제되고 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장담은 하루를 버티지 못했다. 프랑스 BNP파리바 은행이 서브프라임 투자 손실을 고백하면서 위기가 전 세계로 전염되고 있음이 판명됐다.

이번 사태가 일시적 쇼크에 그칠지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금리가 요동치고 주가가 급락하자 미국.유럽.일본 중앙은행은 2500억 달러 이상의 긴급자금을 풀었다. 이런 방화벽 구축이 시장에 안도감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시장 상황이 예상 외로 심각함을 시사한다.

10일(현지시간)에도 미국 씨티그룹이 신용사업에서 5억 달러, 골드먼 삭스의 글로벌 알파 헤지펀드가 26%의 손실이 났다고 공개했다. 도이체방크도 서브프라임 관련 펀드의 손실이 열흘 동안 30%에 이른다고 밝혔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수석 전략가 하워드 윌던은 "마치 부엌에 있는 바퀴벌레처럼 어디서 무엇이 터져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실 서브프라임은 미국 전체 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미만이다. 손실액은 크게 잡아도 1000억 달러 수준이다. 이런 '작은' 돌출변수에도 출렁거릴 만큼 세계시장은 취약성을 드러냈다. 주식.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고공행진에 투자자들이 아찔한 고소공포증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9.11테러 이후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13차례에 걸쳐 금리를 5%대에서 1%로 수직 낙하시켰다. 동시에 막대한 달러화를 풀면서 인위적인 달러화 약세를 유도했다. 여기에는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고 손쉽게 아프간.이라크 전비를 조달하기 위한 목표가 숨어 있다. 중국 역시 세계의 공장으로 올라섰지만 위안화 평가절상은 외면했다. 초저금리를 즐기는 일본은 엄청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금리가 낮은 엔화로 조달해 고금리 통화에 투자하는 자금)을 세계시장에 공급했다. 적게는 340억 달러, 많게는 1조 달러까지로 추정될 정도다. 경제대국들의 이런 자국 이기주의는 글로벌 차원의 유례없는 머니 전쟁을 불렀다. 유동성이 넘치는데도 자산버블이 안 생기면 오히려 이상하다.

일단 단기적인 관심은 서브프라임 부실이 어디까지 전염될지에 쏠리고 있다. 이번 사태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지, 대재앙(글로벌 거품 붕괴)의 전조가 될지는 상당 부분 시장 심리에 달려 있다. 불안한 심리는 의심을 낳는다. 아직 성장.고용 등 세계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손상을 입은 조짐은 없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사상 최고의 기업 실적 발표에도 "그런 성적표 자체가 '싼 돈'의 수혜였을 수도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위기라고 외치면 그것이 바로 위기"라는 격언도 있다. 한국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할 형편은 아니다. 서브프라임 투자 금액이 2000억원이 채 안 되는데 10일 하루 서울 증시에서 43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서브프라임 부실의 직접적 타격보다 글로벌 유동성 축소와 외국투자자의 철수 가능성 등 간접적인 충격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지금 가장 요구되는 것은 서브프라임 사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투명성만이 시장 심리를 안정시킬 수 있다. 중앙은행은 필요할 경우 더 과감히 나서야 할지 모른다. 그래야 투자자들도 과민반응에서 벗어나 차분해진다. 자본주의 금융시장에서 불투명과 불신은 가장 큰 공공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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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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