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질개발·프로의식 가져야(여성인력 활용하자:6·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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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회진출시대」… 구 방향과 문제점/장기근속 어려운 풍토가 걸림돌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자신있게 사는 그녀의 또다른 얼굴」.
도전적이며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일하는 전문직 여성들의 이미지를 한껏 강조한 광고를 볼 때마다 주부 김미현씨(42·서울 개포동)는 부럽고 왠지 주눅들면서 막연한 불안과 억울한 느낌으로 혼란스러워진다.
특히 얼마전 김씨 거래은행의 차장이 되어 앉아있는 대학 동창생을 만난뒤로는 더욱 자주 그런 혼란에 빠진다. 성적 등이 어느 모로든 자신보다 나을게 없어보이던 동창생이 저처럼 어엿한 일꾼이 되는동안 나는 여태 뭘 했던가. 동료 여사원이 결혼한 뒤에도 계속 일하겠다니까 덜컥 연고지도 없는 지방근무 발령을 내는 것으로 회사가 퇴직을 종용하는 것을 보며 「저런 꼴은 당하지 말아야겠다」는 기분으로 결혼과 함께 지레 사표를 낸 것도 문득 한심스럽다.
사실상 그는 결혼생활 15년이 넘도록 세탁,청소,요리,육아,남편을 대신한 친·인척 경·조사 참여 등으로 하루도 편할 날없이 힘들게 살아왔다. 그러나 그의 엄청난 가사노동은 누구로부터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주부일도 가치있는 일,주부직도 평생직이란 인식은 김씨 자신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가 그런 갈등을 내비치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현모양처의 행복과 자기 희생의 미덕」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던 남편도 그렇다면 무슨 일이든 해보라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나. 「이제와서 내가 뭘 할 수 있으랴」 싶은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스르르 사라질 때마다 백화점의 시간제 주부사원·보험판매사원·학원강사 등으로 일하는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른다. 뭐든 전문가가 되기위한 자격증부터 따겠다는 각오다.
한국여성개발원이 최근 완성한 연구보고서 「한국여성의 취업경력」에 따르면 연령 계층별 취업자 비율을 나타내는 연령·취업률 곡선이 M자형으로 여성들의 취업활동은 생애주기에 매우 민감한 영향을 받고있다. 즉 20세 무렵 제1의 정점을 이룬뒤 점점 줄어 26∼30세에 최저 취업률을 보인후 서서히 다시 늘어 40대 후반엔 미혼시기의 최고 취업률보다 높아지는 제2의 정점을 이룬다.
◎출산전후 직장 떠나면 기술·경험 물거품/자녀 자란뒤 재취업해도 거의 하향이동
노동시장에 들어섰던 여성들이 출산·양육과 취업이라는 2중부담의 굴레를 견디지못해 일단 가정으로 돌아갔다 자녀가 어느정도 자란뒤 재취업하는 현실을 한눈에 드러내는 것이다. 또 미혼시절의 직종이 임금·근로조건 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편인데 비해 결혼·출산후 재취업할때 동일직종을 회복하거나 상향이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체로 직종의 하향이동을 경험하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보고서에서 최종학교를 나와 일하는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의 평균연령은 35.5세,취업가능기간은 18.6년인데 이중 실제취입한 기간은 약 40%에 해당하는 7.4년이다. 취업후 게속 노동시장을 지킨 일괄 취업형은 약 41%에 불과하다.
출산 전후의 직종 이동은 취업여성의 학력과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매우 큰 경향. 여성들의 출산전 직종과 출산후 첫 직종이 같은 경우는 22%뿐으로 미혼·무자녀 여성의 현재 직종이 첫 직종과 같은 비율(70%)에 비해 훨씬 낮다. 특히 미혼시절 사무직이었던 여성들의 37%가 출산후 판매·서비스 및 생산직으로 하향이동하고 54%는 노동시장을 떠나버린다. 이처럼 취업여성들의 축적된 기술과 경험이 무용지물이 돼버리는 바람에 특정분야에서 프로적 자질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의류전문회사 이랜드 인사과에 근무하는 함윤숙대리(28)는 낮 동안 회사 부근 놀이방에 맡겨야 하는 18개월짜리 아들때문에 몸과 마음이 피로할 때가 많다. 그러나 「30년을 일할 직장」을 내세우면서 승진·업무배치·정년 등 어느 모로 남녀차별을 두지않는 이 회사에서 반드시 인사관리 전문가가 돼보겠다고 말한다.
여직원들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남자직원들도 나이가 자신들보다 어린 여자상사를 깍듯이 예우하는 일터. 8∼9년 경력의 여자선배들이 과장으로 진급해 보란듯이 능력을 발휘하고 있어 한층 미더운 직장. 아들이 좀더 자라면 다른 남자동료들처럼 오전 7시전부터나 저녁 늦게까지 컴퓨터·각종 외국어 연수 등 업무능력 향상 내지 자기계발을 위한 투자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할 때마다 함씨는 마음이 환해진다. 『앞으로 여성인력 정책은 여성 취업의 양과 함께 질도 높일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는 한국여성개발원 김영옥연구원. 『여성을 부차적 노동력으로 간주해 보조적 업무에만 배치하고 훈련·승진상 차별을 두며 모성 보호를 외면하는 등 여성들의 장기근속 의욕을 꺾는 고용 관행이 바뀌지않는한 산업과 취업구조가 크게 달라질 미래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여성인력을 유효적절히 활용할 수 없을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머지않아 「여성도 일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 「여성이 일하지 않으면 일류기업·선진사회가 될 수 없는 사회」가 되리라는 미래학자들의 이야기에 다시 귀기울여야 할 때다.<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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