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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독점 잘못” 첫 판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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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사법처리된 다른 양심선언자도 영향줄듯
감사원의 감사축소 의혹을 언론에 폭로한 혐의로 전격 구속됐던 이문옥 전 감사관(53)에 대한 무죄선고는 「국민의 알 권리는 자유로운 정보수집을 바탕으로 하는 여론 없이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며,민주주의체제에서는 의견발표와 전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라는 헌법이념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또 이번 판결은 공무원의 비밀보호범위에 대한 사상 첫 판결로 반드시 비밀을 유지해야 할 국가기밀이 아닌한 국민에게 공개돼야 한다는 행정공개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속당시 검찰의 과잉 대응이라는 비난과 함께 국가의 정보독점 한계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기도 했던 이씨에 대한 재판은 그동안 3년3개월여를 끌어오다 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재개됐었다.
그동안 재판이 지연된 이유는 공무상 비밀누설행위에 대한 판례가 거의 없어 심리가 어려웠던데다 재판부가 최종판결을 내리는데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매우 부담을 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무상비밀은 법에 규정돼 있지 않더라도 정치·군사 등 필요에 따라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게 상당한 공익이 있는 경우가 포함되지만 그것이 특수집단에만 유리하다면 비밀을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즉 부동산투기 문제가 심각했던 당시 상황에서 감사원의 비업무용동산 보유실태자료는 은행 감독원이나 해당기업의 주관적이고 특수한 입장에서나 비밀보호가 필요할 뿐 국민의 입장에선 이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재판이 끝난뒤 『6공정권 당시 심리도 제대로 못하며 3년을 끌었던 사건을 당시 권력측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무죄판결을 내리는데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어려운 판단을 내린 사법부에 감사를 표시했다. 이씨는 이어 『재판관이 판결을 하면서 임면권자의 눈치보기와 국민 공익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은 재판관의 본연의 임무를 다한 것』이라며 『이번 판결이 사법부 신뢰회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재야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행정편의주의와 권력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보공개의 수준이 결정되고 일부는 조작되기도 했던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씨에게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현재 서울고법에 계류중인 이씨의 파면처분 취소청구소송 결과도 이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씨와 마찬가지로 군내부나 행정조직의 내부비리를 폭로했다 사법처리 됐던 이지문중위·운석양이병·한준수 전 연기군수 등 이른바 「양심선언자」들에 대한 보호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정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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