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 챙기지 못한 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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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재산을 압류하겠다는 관청의 압류예고장을 받아본 가정주부는 가슴이 철렁하게 마련이다. 꼼꼼히 살펴보니 주차위반 3만원 체납에 따른 압류예고장이다. 이때 대부분의 주부는 차압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황급히 체납액을 납부하러 구청을 향한다. 3개월이나 지나 똑같은 압류예고장을 받고 주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자신이 구청까지 가서 납부한 똑같은 과태료를 근거로 또 압류예고장을 보냈으니 구청이 시민을 상대로 장난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않는다. 항의전화를 하니 없었던 일로 하고 영수증을 보내달라고 한다.
6개월전 신호위반으로 범칙금을 문 한 회사원은 경찰서로부터 출두명령서를 받았다. 모월 모일 어디서 위반한 교통 범칙금 3만원을 체납했으니 경찰서로 출두하라는 강압적 지시서였다. 다행히 그는 자신의 영수증철에서 문제의 범칙금 영수증을 찾아내 해당경찰서로 항의전화를 했다. 전화받는 담당자는 심드렁한 어조로 알겠다고만 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경우가 심하면 느닷없이 1백일 운전면허 정지처분을 받는 사례까지 나온다. 아차하고 범칙금 날짜를 넘겨버리면 으레 독촉장이 나오고 경찰출두 지시서가 있은 다음에야 법원 결정이 있게 마련인데 중간의 독촉장 출두서가 우편사고로 전달되지 않을 때는 1백일 면허정지 처분만 통고받는 날버락을 당하기도 한다.
3년씩이나 단수통고를 받아가며 살아가는 도심의 주부도 있다. 23년전 수도료를 내지 않았다는 통고를 받은 주부는 영수증철을 뒤져 분명 납부한 영수증을 찾아내 사실을 관할 관청에 알려주었다. 담당자는 알겠다고 했지만 단수통지서는 그후 계속해 3년째 배달되고 있다.
그나마 영수증을 제대로 챙겨 보관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꼼짝없이 2중 납부에 각종 처벌조치를 겹쳐 당해야 한다. 이런 일들이 어쩌다 일어나는 사고가 아니라 항다반사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민원사고라는 점에서 도대체 구청이,경찰서가,시청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영수증이 없다는 죄 하나만으로 차압예고장을 받아야 하고,경찰에 출두해 죄인시 당해야 하며 단수의 위협까지 받아야 하는 공포의 도시생활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넘치는 업무량으로 일부의 착오는 있을 수 있는 오늘날 어째서 이처럼 초보적인 실수가 남발되고 있는가. 주차단속원과 교통경찰이 단지 건수만을 채우기 위해 기습적으로 과태료를 남발하고 있고,납세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은채 출두서나 압류예고장을 보내 겁을 주면서 납부를 독촉하는 위협적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행정편의주의의 횡포탓이다. 행정말단의 이런 횡포가 시민과 관청,국민과 정부의 관계를 멀게 한다는 인식아래 근본적인 쇄신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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