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이후 제조업 현장르포,신경제 피부에 안닿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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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26일 오후3시 서울 九老洞 한국수출산업공단은 나른해 보였다.늦여름 따가운 볕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공단본부에서확인한 통계는 나른함의 근원을 어느 정도 짚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올 상반기중 입주업체들의 생산실적은 미진하나마 5.1%(작년 동기 대비)늘었으나 7월 들어서는 다시 제자리 걸음에 머물렀다.
공단본부 맞은편에 있는 三慶복장(의류제조업체)을 찾아 가보니그 나른함은 이미 무기력으로 변해 버린 듯 했다.
『현재 가동률이 얼마나 됩니까』『보유중인 시설은 다 돌리고 있습니다.』 처음엔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었다.최근 통계청이 집계한 7월중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9.2%인데 가동률 1백%인 회사가 왜 이렇게 맥이 풀려 있는가.
그러나 이같은 궁금증은 곧 풀렸다.일거리가 없어 생산라인을 계속 줄여 나감으로써「의미없는 가동률 1백%」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경복장의 생산라인은 10년전 15개에 달했으나 지금은 2개로 줄었다.
中國이나 東南亞국가들의 저임에 밀려 수출물량을 따올 수 없기때문이다.이나마의 라인도 돌릴수록 적자다.
『한 라인에서 월 매출이 6천만원은 돼야 적자를 면하는데 지금은 4천만원에 불과해 인건비도 못 건지고 있습니다』 尹富煥총무부장(54)의 설명이다.
이 회사가 여느 중소기업이 아닌 코오롱상사의 子회사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뚜렷한 기술없이 노동력에 의존하는 우리 경공업체의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7월 들어서도 九老공단내 평균 공장가동률은 83.8%로 전달과 같은 수준이며 신정부가 출범한 지난 2월(84.2%)보다는오히려 낮아졌다.공단내 휴업업체수도 작년말 10개에서 7월말엔18개로 늘었다.신경제의 정책효과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공단관계자의 분석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공단을 빠져 나오면서 만난 亞細亞산업(기계설비제조업)이라는 한 영세업체의 바쁜 손길은 마음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10여명의 종업원들이 기름때를 흠뻑 묻히고 시끄러운 기계소음속에서 선반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 만나 현장얘기 좀 듣고 싶다』고 했더니『受注상담하고작업현장을 점검하느라 자리를 지킬 때가 별로 없다』는 대답이었다.중소기업도 업종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感은 기계설비등 중공업 관련업체가 몰려 있는 昌原공단의경우를 볼 때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여러가지 면에서 회복세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 공단본부 蔡永一경영지원과장의 진단이다.그는『새로운 변수인 실명제의 부작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나 대기업 계열사와 중견기업이 많아 크게 우려되는 수준은 아니다』고 덧붙인다.
창원공단 입주업체들의 상반기 수출증가율은 평균 6.4%로 지속적으로 나아지는 추세이고,6월중 가동률은 82.6%로 전달보다 1%포인트 높아져 7월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일단 엔화 강세가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름휴가가 있었던 이달과 추석이 끼어 있는 내달은 가동률이나 수출면에서 다소 주춤할 것이라고 현장관계자들은 내다봤다. 업종이 비슷하더라도 입주업체들 간에는 활력회복정도에 차이가 있다.
三美특수강과 韓國철강은 3교대 근무를 할 만큼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반면에 大宇중공업.起亞기공.斗山기계.世一중공업등은 사정이 별반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한 공단관계자는 전한다.
조선.전자.자동차업종이 호조를 보이면서 浦鐵도 호황을 누리고있다.浦鐵 기업문화부 權赫秀부장은『7월엔 월간으로 사상 최대의생산량을 기록했고 8월도 같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국내수요가 워낙 밀려 中國등으로의 수출은 오 히려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起亞자동차도 대체로 잘 돌아가고 있다.『엔高로 수출이 잘 되고 있으며 세피아.프라이드등 잘 팔리는 차종은 재고가 달리는 형편』이라며 金龍植 자금부차장은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三星전자의 경우 반도체는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고 컴퓨터.家電제품 수출도 괜찮은 편이다.東南亞.美國.中國등지로의 수출이 꾸준해 생산활동도 활기를 유지하고 있다.
하반기 경제동향과 관련해 기업인들의 관심은 역시 실명제의 정착여부에 쏠려 있다.특히 중소기업인들은 課標노출에 따른 세부담증가를 가장 우려한다.私債시장위축으로 겪을 자금경색도 추석을 앞두고 큰 걱정거리다.
대기업들 역시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투자확대를 결정하겠다는쪽이 많다.
이같은 관망세가 얼마나 오래갈지가 앞으로의 경제활성화를 좌우하고 있는 셈이다.
『실명제의 전격실시에 따라 일고 있는 각종 부작용을 세심한 정책노력으로 신속히 극복해야 합니다.그래야만 제조업들도 중장기투자계획을 안심하고 세울 수 있을 겁니다』 구로공단관계자는 기업인들의 불안해소가 경제활성화의 첫걸음이라고 강조 한다.
〈沈相福.李哲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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