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토론] 카드사태 해법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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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참석자 (가나다 순)
변양호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이보우 여신금융협회 상무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사회: 김왕기 본사 논설위원

신용이 생명인 신용카드가 신용을 잃으면서 금융시스템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카드채 대란, LG카드 사태에 이어 외환카드가 파업에 들어가는 등 산 넘어 산이다. 신용사회로 가는 열쇠인 신용카드가 되레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경기회복을 지연시키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LG카드를 고비로 카드문제는 마무리된 것인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사회:LG카드 사태로 진통이 컸습니다. 어쩌다 신용카드가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상황이 됐나요.

▶홍:국내 신용카드 산업은 현금서비스 한도 폐지 등 규제완화에 힘입어 연 2백, 3백%씩 급성장했지만 정작 중요한 신용심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다 경기변동의 위험부담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결과 연체율이 높아지고,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카드사가 부실해지면서 불안요인이 됐습니다.

▶이:카드가 순수한 경제논리가 아니라 정책적 수단으로 이용된 게 문제의 발단입니다. 카드사들이 외형 키우기에 급급했던 탓도 있습니다. 특히 카드사의 자금조달원이 투신사 등에 집중되다 보니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립니다. 경영부실에다 정책의 일관성 부재, 경기회복 지연 등이 겹친 결과지요.

▶변:금융기관의 자기관리 능력 부재에서 비롯됐습니다. 카드사는 고객의 소득과 결제능력도 심사하지 않았고, 투신사 등도 부실을 자초했습니다. 물론 규제완화의 시점이 적절했는지, 또 자유화의 전제인 감독강화가 제대로 됐는지는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 책임은 카드사들이 신용조회 없이 카드를 마구 발급한 데 있습니다.

▶사회: 김대중 정권 시절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카드를 통한 과소비를 부추긴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변:정부가 어떻게 개인의 카드 사용을 부추깁니까. 세금혜택 등을 주면서 카드를 장려한 것은 세원 포착을 쉽게 해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지 경기를 부추기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홍:개인 신용자료나 노하우가 없는 상황에서 규제철폐가 미칠 영향을 생각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부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카드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경기가 회복되는 것처럼 보이자 정부가 제동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었겠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일을 방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태를 키운 측면은 있습니다.

▶이:신용불량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정책의 일관성 부재 탓도 있습니다.

▶사회:그렇다면 카드사태는 누구의 책임인가요. 정책실패의 결과입니까, 아니면 기업경영의 실패입니까.

▶이:총체적 시스템 부재의 결과로 봐야합니다. 카드사들이 기본인 신용평가를 못해 연체가 생기고 회수.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카드사의 자금조달 과정에 심사나 감독 기능이 작동했으면 이 지경은 안 됐을 겁니다. 정부도 추심제도 완화 같은 비현실적인 정책을 내놓는 바람에 소비자들이 빚 상환을 미루거나 기피하는 결과가 빚어져 사태가 악화됐습니다.

▶홍:카드회원과 매출이 급증한 것은 바로 표시가 나지만 연체는 1, 2년 후에 나타납니다. 그 바람에 카드사들은 속으로 곪는 줄 모르고 떼돈 버는 장사로 착각해 공격적 경영을 했고 정부도 이를 간과했습니다. 규제개혁위원회도 우리의 수용능력과 속도.영향 등을 신중하게 짚어 봤어야 했는데 그 점도 아쉽습니다.

▶변:정부는 재작년부터 경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카드사들은 돈 잘 벌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 자율화에 역행하지 말라며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사회:왜 유독 LG카드가 계속 문제가 되나요. 지난해 11월 LG에 2조원을 지원하면서 한동안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변:당시는 LG카드를 청산하느냐 살리느냐의 기로였는데, 쉽게 결론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후회없고 종합적인 분석을 위해 일단 시간벌기용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홍:카드사의 경영부실은 대동소이합니다. 연체율 대손은 은행계 쪽이 큰데, 덩치 큰 은행에 합병되다 보니 부실이 덮여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전업계 카드사 중에서도 LG가 너무 공격적인 경영을 한 결과 부실이 컸습니다. 여기다 LG그룹의 지주형태로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대주주의 실체가 모호해졌습니다. 그 바람에 계열사 지원이 어렵게 되고,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됐습니다.

▶사회: LG카드 처리 과정에서 정부는 국민은행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 붕괴를 이유로 추가 지원을 밀어붙였습니다. 금융자율화에 역행하는 것 아닌가요. 또 앞으로 LG를 비롯한 카드사들이 잘 굴러갈 수 있겠습니까.

▶변:LG카드가 잘못되면 27조여원의 손실이 생기고, 금융권에 큰 충격이 올 것이라고 전문기관이 분석했습니다. 또 카드 돌려막는 사람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정부가 LG카드를 청산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하에 일부가 자기 부담을 줄이려고 게임을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LG의 경우 5조원을 지원하면 부실을 모두 털 수 있습니다. 카드업은 5~6%로 자금을 빌려 20%대로 빌려줍니다. 부실만 없으면 굴러갈 수 있습니다. 다른 전업사는 부실이 크지 않고, 은행계는 은행 손실 분담으로 별 문제가 없습니다.

▶이:은행들도 청산보다 회생이 이익이라고 판단하면서도 각자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시간을 끈 것 같습니다. LG는 고비를 넘겼고, 삼성.롯데.현대 등 다른 전업사도 부실이 적은 데다 충당금을 많이 쌓았고, 계열사 증자 등 구조조정을 하기 때문에 올 하반기부터는 월별로 흑자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수익모델을 잘 만들어 나가면 전망은 나쁘지 않습니다.

▶홍:이미 다중 이용자 한도 등을 많이 줄여놔 생각보다 경제에 대한 영향이 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LG카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해결이 아니라 '미봉했다'는 게 옳을 겁니다. 산은의 위탁경영으로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인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른 전업사들도 고비는 넘겼지만 카드업이 신뢰를 잃어 자금조달이 순조로울지 의문입니다.

▶사회:이번에 정부는 LG그룹에 '대주주의 유한책임'범위를 웃도는 자금 분담을 요구했습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홍:LG그룹은 이상적 형태인 지주회사로 갔는데, 막상 문제가 생기니까 거꾸로 법적으로 아무도 책임을 안 지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과거 방식이 좋다고도 할 수 없는 미묘한 문제입니다.

이번엔 재벌이 돈벌면 다 가져가고 안 되면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정서적 압박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사태가 복잡해 넘어갔지만 옳진 않죠. 재산권의 책임과 의무가 명확히 구분돼야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는데 이번 일로 인해 보이지 않는 데미지가 클 것입니다.

▶사회:신용불량자 등 경제충격을 고려할 때 카드문제를 시장원리에만 맡길 수도 없고, 계속 정부가 나설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근본 대책은 없을까요.

▶변:카드사들이 수익을 내야죠. 심사와 신용정보에 대한 금융기관의 철저한 관리가 급선무입니다. 특히 개인의 정보를 축적해 일생 동안 따라다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채권은행 등이 자율적으로 청산 또는 회생을 결정하는 민간 자율이 가능해집니다. 금융기관의 실력과 감독의 질이 개선돼야죠.

▶홍:이번 위기의 교훈은 개인 신용정보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카드사들은 돈놀이 관행에서 벗어나 판매수수료로 수익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단기적으로 신용불량자 양산을 막기 위해 전업사들의 회사채 만기 연장을 도와줘야 할 겁니다. 장기적으로 과점 상태인 카드산업의 구조조정도 생각할 문제입니다. 아울러 투신사 문제 등을 해결해 앞으로 금융문제가 생기면 '시스템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이:구조조정을 통한 수익성 제고와 신뢰회복이 급합니다. 특히 정부는 정책적 목적으로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을 버려야 합니다. 사면이나 채권 추심 등은 이상적으로만 하지 말고 현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나 감독기관은 사전 개입을 줄이되 조정은 적기에 해야 할 것이며, 카드사 진출입이 시장원리로 이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리=나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