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큰돈 아직은 별다른 동요없다/실명제이후 자금동향을 보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특별한 인출사태없고 예금유입 다소 줄어/증권·채권·사채시장 위축속 금값등 치솟아/「두달간 안정 그후 불안」 진단나와
전격적으로 실시된 금융실명제로 자금시장의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뚜렷한 실체가 없으며 한가지 분명한 점은 현재까진 큰 돈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명예금을 실명으로 전환하는 데는 앞으로도 두달의 여유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관망하고 있다는 금융계의 진단이다.
○현금 3천억증가
실명제 실시후 이틀동안의 움직임을 보면 은행창구 등 금융시장은 비료적 안정돼있는 반면 증권시장의 경우 주식값이 폭락했고 채권시장은 아예 형성되지 못했다. 예상대로 사채시장은 얼어 붙었으며 암달러는 달러당 한때 9백원까지 치솟았다. 금값도 소매값이 한돈쭝에 4만3천원에서 4만5천∼4만6천원으로 올랐다.
한국은행의 8·12조치이후 금융시장 상황발표에 따르면 현금통화가 13일에 1천억원,14일에 2천억원 등 이틀동안 3천억원이나 늘어나 8조8천억원 수준을 보이고 있다. 14일은 주말이라서 평소에도 1천5백억원선의 현금통화가 나가는데 이날은 5백억원 정도 더 나갔다는 한은측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총통화(M₂)수위는 관리목표(18%)를 웃돈 19%선에 육박해 있으나 앞으로 중소기업의 부도사태가 은행의 자금상황을 고려해 돈이 더 풀려나갈 것이 분명해 사실상 통화관리가 어려울 전망이다.
한은은 이틀동안 현금인출 러시현상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인출상황은 없었으며 자기앞수표의 발행을 꺼려 현금으로 돈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은데다 시장상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예금유입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일시적인 현상”
당초 재무부는 예금의 실명전환기간인 두달동안 찾아간 예금액의 합계가 3천만원을 넘을 경우 국세청에 명단이 통보된다고 발표했었다. 그러자 하루에도 2백만∼3백만원씩 물건을 팔아 예금했다가 며칠 뒤 다시 물건을 떼어 오려고 몇백만원을 빼내가는 서울 남대문·동대문시장의 상인들이 국세청에 명단이 통보될까봐 돈을 그대로 갖고 있다가 물품 구입자금으로 건네주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당국은 이 기간중 총 인출액 대신 은행에 예치한 금액보다 찾아간 금액(순인출액 기준)이 3천만원을 넘는 경우로 완화키로 했다.
한은은 13,14일에 나타났던 예금인출과 신규예금 감소현상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은이 8개 은행의 서울시내 40개 점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3일에 예금이 4백30억원 줄었는데 14일에는 1백61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시열 한은 자금담당 이사는 『돈이란 결국 수익성·안정성·유동성을 찾아 움직이게 마련인데 정부의 대책이 부동산투기나 해외도피를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 놓았기 때문에 결국은 증시나 제도금융권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러나 금융계에는 금융시장이 당초 정부의 「단기불안,장기 안정」 예측과는 정반대로 「단기 안정,장기 불안」 양상을 보일 것 같다고 진단하는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10월12일까지는 예금 인출액이 3천만원을 초과하면 국세청에 명단을 통보토록 하는 등 인출방지책이 있으므로 크게 움직이지 않겠지만 그 이후에는 적어도 국세청에 통보되지는 않으므로 실명으로 위장돼 있는 차명예금은 물론 실명의 거액 예금까지도 움직일 수 있다는 예상에서다.
7월말 현재 발행잔액이 14조5천억원에서 이르는 양도성 예금증서(CD)의 향방도 단기 금융시장의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그전에는 발행은 물론 만기가되어 원금과 이자를 찾을때 모두 무기명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만기가 돼 찾을 때 실명을 대야 하는데 이 실명화된 자금이 다시 CD를 찾을 가능성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가짜 CD사건때 경험했듯이 은행권의 대표적인 고금리상품인 CD자금이 이탈하면 총통화계수는 높아지는데도 은행에 자금부족이 발생해 기업의 자금 공급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10월12일까지 두달동안 금융시장은 큰 동요을 보이지 않다가 10월12일이 지난 이후에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리란 예상이다. 더구나 이 시기는 2단계 금리자유화를 목전에 둔 시점이라서 더욱 그렇다.
○CD향방에 주목
이와 관련,금융계는 가명예금이었는데 이미 운좋게 빠져나가 금고 안에 있을 자금과 아직 금융권에 있는 차·가명의 금융자산을 산업자금으로 유도할 수 있는 「출구」가 필요하며 그 방안의 하나로 장기저리의 실명채권을 발행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자금시장은 예금인출과 현금퇴장,증시침체와 중소기업 자금난 속에서 서서히 추석이라는 최대의 자금수요기를 맞고 있어 진퇴양난격이다. 이 사태의 해결방안으로 돈을 푸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지만,무리한 통화증발은 자칫 「저성장속의 물가앙등(스태그플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다.
금융당국은 국민들의 막연한 불안심리를 누그러뜨리고 실명제로 쫓긴 돈을 생산부문으로 흐르게 하는데 노력하고,국민들도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양재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