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환영 속으론 걱정/실명제파장 고심하는 정치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굵직한 봉투끊겨 지출긴축 불가피/가명계좌 의원들은 정치생명 “흔들”
여야의원들은 금융실명제 실시에 대해 겉으로는 한결같이 환영하면서도 뒷돈줄 차단에 따른 이런저런 걱정때문에 심각한 속앓이를 겪고 있다.
특히 「눈먼 돈」을 많이 「거둬들여온」 여야 중진급 의원들은 물론이고 5,6공에서 정치자금을 주물러 엄청난 「은닉 축재재산」을 가진 구여권 고위인사들은 말못할 고민에 쌓여 있다는 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 또 한차례의 엄청난 비리혐의가 도마에 오를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실명제가 정치권에 미칠 심대한 영향과 변화를 실감하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국고보조금·후원금·기탁금 및 여러경로의 정치자금으로 그동안 흥청망청써온 여당의원들의 타격이 아무래도 더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계보원들에게 정치자금을 나눠주며 수입도크고 씀씀이도 컸던 중진의원들도 당장 고민에 싸였다.
황명수 사무총장은 14일 『이제는 돈이 아닌 인격으로 조직을 관리해야지』라고 했다.
당내 모 중진의 경우 『그동안은 절친한 대기업 실력자들과 탄탄한 중소기업 주들로부터 어느정도 지원을 받아 연말이나 명절때 친하게 지내는 초선의원들은 지원해왔다』며 『앞으로 정치자금 지원을 끊을 경우에도 그들이 게속 따라 주겠느냐』고 씁쓸한 표정도 지었다.
한 3선의원은 『그동안 선거때마다 주위에서 자금을 지원해주는 덕분에 선거가 끝나면 몇억원정도는 남겨 은행에 예치시켜두고 평소 정치자금으로 써왔다』며 『이제는 돈이 남는 선거도 없겠지만 설령 몰래 생긴 정치자금이 남더라도 달리 보관할 곳이 없어졌다』고 실토했다.
당의 한 초선의원은 『14대총선때 당시 박태준 최고위원으로부터 상당한 선거자금을 지원받았다』며 『앞으로 당의 지원은 물론 당내 중진들로부터의 개인적 지원도 끊어지면 우리같은 초선의원들은 무슨 돈으로 정치를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모범적인 후원회를 운영해온 한 여당의원도 『후원금이 절반이하로 줄어들게 생겼다』며 『실명제로 굵직한 돈봉투가 없어지면 사실상 후원회 모금도 어려워진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와함께 당내에서는 11일 마감한 재산등록때 평소 알려진 재력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재산을 등록한 의원들에 대한 불안한 소문이 나돌고 있어 실명제 전격실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정치권에 밀어닥친 태풍인 셈이다.
아직 당내에서 구체적으로 거명은 되지않지만 몇몇의원들이 재산규모를 줄이기위해 가명계좌에 입금된 금융자산을 등록하지 않았으며,이들은 재산과 정치생명중 한가지를 선택해야될 입장에서 실명제 전격실시를 원망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민주당의원들 상당수도 사정한파에 가뜩이나 어려워진 정치자금 마련이 바싹 말라버릴까봐 속앓이. 특히 실명제실시로 「야당의 돈줄」이었던 중소기업의 비자금 조성이 1차로 막힘에따라 야당이 어떤 후면에서 『여당보다도 더 큰 타격』인지도 모른다.
한 계보를 이끌고 있는 중진의원은 『지금까지도 중소기업인들은 세무사찰 등 때문에 후원회에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금기시했다』며 기업인의 야당지원은 끝난 것이라고 분석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우리당에도 주식투자 등 현금 굴리기로 소문난 현찰부자 L씨가 이번 실명제로 적지않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며 『이들 현찰부자가 의원들에게 직간접 도움을 받던 일부 당지도부도 연쇄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
당내에서는 특히 전국구의원 진입시 30억원의 공식헌금 외에도 10억원규모의 별도 개인헌금을 한 것으로 알려진 모의원의 별도 돈주머니도 실명제로 묶겨버렸는지의 여부도 관심.
○…재산상태의 투명화에따라 그동안 의혹을 불러온 구여권의 정치자금 동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두 전 대통령을 비롯,P씨·또다른 P씨 등의 재산보유상태도 유리알같이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러나 또다른 관계자는 『사채시장 소문에 따르면 연희동측은 이미 대비책을 강구했다더라』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구여권실세들이 집권경험이 있은 탓인지 김영삼대통령의 깜짝쇼에 유의해서인지 이미 오래전부터 현금화를 알게모르게 해왔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엄청난 정치자금을 퇴임후에도 은닉한 것으로 보이는 구여권의 실체가 이번 조치로 드러날 경우 국민들에게 줄 충격은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구여권의 동향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민정계 K·L·K의원 등 그동안 여당의 정치자금을 주물러온 인사들의 「통장」도 관심사. 민자당의 한 의원은 『총선·대선에 뿌려진 여당의 정치자금 규모로 미뤄볼때 당시 실무책임자들이 지금까지 별도의 통장을 관리하고 있을 개연성이 없지않다』면서 『그에따른 마음고생이 클것』이라고 추정했다.<이상언·최훈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