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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회사’ 전환한 법무법인 태평양 이정훈 대표 변호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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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12면

신인섭 기자

이 대표는 태평양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사령탑이다. 1986년 배명인·김인섭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태평양 창립에 참여한 3인의 멤버 중 한 명으로 1999년 대표직에 올랐다. 그에게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유한회사로 조직을 변경한 이유부터 물었다.

“전문화 · 대형화 위해 조직 바꿔 … 업계 1위가 목표”

“기존의 법무법인 형태는 1980년대 중반에 만들어졌습니다. 변호사 수 5, 6명을 상정한 것이지요. 그래서 수임 사건에 대해 구성원 모두가 무한 연대책임을 지도록 돼 있고요. 정관도 전원이 동의해야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소속 변호사가 매년 늘어
나고 분야가 다양해지는 상황에는 전혀 맞지 않아요. 누가 어떤 사건을 맡았는지 알 수가 없는데, 무슨 책임을 집니까. 한마디로 몸이 커지면서 옷이 몸에 맞지 않게 된 겁니다.”

현재의 법무법인 형태가 그렇게 불편하다면 다른 로펌들은 왜 조직 변경에 나서지 않는 것일까.

“조직을 바꾸면 기존의 누적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조직 변경의 경우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 특별규정이 있어요. 물론 주식회사처럼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아야 하고, 매년 법무부에 대차대조표를 제출해야 하는 부담은 있습니다. 경영이 투명하지 않으면 힘들지요.”

-변호사 소득신고라는 게 좀 누락시키고…그러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100% 세금을 내왔습니다. ‘가장 모범적인 로펌을 만들자.’ 법무법인을 시작할 때부터 세웠던 목표입니다. 이익집단이 아니라 가치집단이라는 자세로 의미가 있는 로펌을 만들자고 했지요. 중요한 결정은 한두 사람이 하지 않고 회의를 통해서 했고요. 구성원들에게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수익배당을 했습니다. 그것이 태평양이 계속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법조계에선 태평양이 유한회사 전환을 계기로 덩치 키우기에 나설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 대표는 전문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 차원이라고 했다.

“어디까지나 전문화가 먼저입니다. 전문화하기 위해 대형화를 하는 것이지요. 국제중재, 정보통신, 중국 등 새로운 분야들이 계속 생기고 있어요. 이런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더 많은 전문인력이 필요합니다. 전문부서가 처음엔 5개였는데 7, 8개로 늘고 지금은 20개나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규모가 커지고 있지요.”

-그래도 염두에 둔 적정 규모가 있을 것 아닙니까.

“지금의 두 배 이상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변호사 수 기준으로요.”

-다른 로펌과 합병할 계획은 없는지요.

“합병을 통한 시너지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에서도 합병 후 10년 정도 지나면 작은 회사 쪽 인력은 전부 떨어져나간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더욱이 변호사들은 자존심이 강한 직업이라서….”

현재 태평양에 소속된 변호사(외국변호사 제외)는 148명으로 1위인 ‘김&장’(280명)에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이 대표는 1위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우리 목표는 최고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송무(재판) 쪽은 우리가 확실한 우위에 서 있다고 봅니다. 일찍부터 법원에서 우수한 분들을 영입해왔지요. 반면 일부 로펌이 강점을 발휘해온 국제거래 분야는 이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 분야가 돼 가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특히 법률시장 개방이 국내 시장을 ‘적자생존’의 구조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의 법률가 조직인 로아시아(LAWASIA) 회장을 맡고 있는 등 활발한 교류활동을 펼쳐온 ‘국제통’이다.

“이기는 자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 로펌들도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고요. 변호사 시장도 종합병원처럼 운영되는 대형 로펌과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소형 로펌인 ‘부티크’, 그리고 개인 변호사로 분야가 더욱 세분화될 것으로 봅니다. 어떤 분야는 어디서 잘한다는 식으로 정평이 나면 그쪽으로 일이 몰리는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봅니다.”

그는 긍정적 효과가 많을 것으로 보면서도 불법·탈법 행위가 자리잡지 못하게끔 공정한 룰(rule)이 관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로펌이 양쪽 당사자를 모두 변호한다든지, 외국 로펌이 할 수 없는 분야를 뒷거래로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러다간 흙탕물이 돼요. 지금까지는 변호사협회의 시장관리 기능이 약했는데, 앞으로는 강화돼야 합니다.”

-외국 로펌 진입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면.

“외국 로펌은 영미법을 준거로 하는 국제거래 분야에서 상대적 우위에 있어요. 그런데 국내법 분야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시킬 수 있습니다. 무조건 외국 로펌이 선진화돼 있고, 모든 소송을 잘할 것이라고 PR을 할 수가 있지요.”
그는 “법률시장 개방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치지 말고, 오히려 해외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며 역(逆)발상을 강조했다.

“국내 로펌 중 처음으로 일본 도쿄와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설치했는데요. 뉴욕 사무소도 당장은 아니지만 검토를 하고 있고요. 장기 투자라고 봅니다. 요즘은 모든 법률 수요에 국제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 중소기업들도 중국 수출이든, 뭐든 국제거래를 하지 않는 곳이 없어요. 국내 로펌도 해외에 나가서 현장 경험을 축적하고 있어야 국내 기업들의 법률 수요를 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 대표는 “우리에게 합작 제의를 해오는 해외 로펌도 있지만 특별히 어느 곳하고 독점적인 결합을 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토종 로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직은 외로운 ‘유한회사’ 실험이다. 그 실험의 성공 여부에 법조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정훈 대표 약력

▶서울대 법대 졸업·사시 11회 ▶서울지검 검사 ▶미국 노터데임대 로스쿨 J.D. ▶변호사 개업 ▶법무법인 태평양 창립 ▶한국지적재산권학회장 ▶대한변협 법률사무개방연구위원회 위원장(현) ▶로 아시아(LAWASIA) 회장(현) ▶대한중재인협회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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