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일로 8·15 승화시키자/김용서교수(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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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과거털고 「새 역사의 장」펼때
한국과 일본은 그동안 「같은 8·15」를 서로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해 왔다. 그것은 일본의 「전후」가 몇번이나 크게 바뀌어 왔는데도 우리는 그들을 「전전」의 일본으로만 착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도 1950년대에는 8·15를 패전과 죄의식을 느끼게 한 침략의 과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러한 「일본의 전후」는 경제대국이 된 70년대에 이미 끝났다. 그들은 「과거」에 대한 열등의식과 책임의식에서 벗어났고 아직도 빈곤과 분열에 허덕이는 아세아를 한심한 눈으로 보고 있다.
한국에 있어서 8·15는 적어도 50년대(전쟁과 그 복구시대)까지는 식민지의 쓰라린 「과거」의 상처가 독립된 신흥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무거운 짐이었다. 우리는 잃어버린 과거를 돌려달라고 일본에 한풀이로 일관해 왔다. 그들도 충분한 배상을 피하면서 죄의식만은 상당히 남아 있었다.
60년대 중반 한일회담으로 그들은 한국에 대한 부채의식을 헐값으로 청산했다. 한국도 이를 악물고 가련한 동정의 대상에서 벗어나려고 힘찬 발전을 시작했다. 70년대에는 그들이 오히려 발전하는 우리의 미래를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존경과 협조로 대했다. 그들도,우리도 과거가 짐이되는 「전후」는 끝났던 것이다.
일본의 80년대는 미국과 대등한 동반자로 세계적 팽창에 도전하며 국제화를 부르짖기 시작한 시대였다. 그들에게 8·15는 한때 세계사에 도전하다 못다한 꿈의 애석한 시행착오처럼 인식이 바뀌어 갔다. 우리의 80년대는 민족중흥의 상승세가 좌절되고 또 다시 분열과 혼란이 물결치는 안타까운 「과거복귀의 8·15」였다. 우리는 여전히 일본에게 「과거」를 따졌고 그들은 어이없다는 태도였으나 「냉전 덕분」으로 한국의 요구가 일부 수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붕괴된 90년대에 일본에 있어 과거는 시끄러운 잠꼬대로 들릴 뿐이다. 혐한·이한의 논의가 바로 그 증거다. 그들은 그동안 축전된 경제대국의 힘으로 정치대국이 되려고 내부갈등의 씨앗인 보수·혁신의 갈등을 뛰어넘어 과감한 실험의 용광로에 불을 붙였다. 최근의 연립정권 성립은 그런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명치유신때 낡고 부패한 중앙정부와 거칠고 성난 지방의 새 연립세력이 양보와 타협에 의해 강력한 근대국가로 소생하고 대외로 팽창하던 민족중흥의 실험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90년대의 8·15는 그들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적 도전과 새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모든 낡은 것에 대해 말로 인되면 힘으로 부수겠다는 거센 물결이 도도히 흐르기 시작했다.
한말의 급박하던 풍운과도 같은 이 상황하에 누가 우리를 아직껏 과거에 매달리게 하는가. 누가 우리를 아직도 지역감정이나 보수·혁신의 민족적 분열로 이끌고 있는가.
일본을 보라,혁신세력이 이념을 굽혀가며 신흥보수세력과 대동단결하지 않는가. 보라,그들은 보수금권정치의 핵심에 있던 세력들이 스스로 과거를 비판하며 개혁의 기수가 되어 새 역사를 개막하는 주역이 되고 있지 않은가. 누가 그들의 과거를 따지는가. 분열을 막기 위한 그들의 인내를 배워야 한다.
다행히 우리도 새로운 개혁정부가 들어섰다. 그동안 묵은 부패와 무능의 위선을 척결하고 있다. 새로운 젊은 피가 소생할 계기는 마련되었다. 다만 일본과 다른 것은 개혁이 모든 이질적 세력의 대동단결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포용과 적응의 화합이 아니라 아직도 「나는 깨끗하고 너는 더럽다」 「너는 뭐가 깨끗해서 설치느냐,어디 두고 보자」는 식으로 한말의 망국적 편가르기의 옹졸·아집이 남아있는 한 개혁은 다시 분열과 혼란으로 묽어져 갈 것이다. 개혁이란 본래 쓰라린 양보와 엄격한 자기억제가 대동단결할 때만이 성공하는 법이다.
우리가 원하든,원치않든 세계는 일본과 한국의 개혁을 경쟁의 눈으로 볼 것이다. 우리보다 늦게 시작한 일본이 성공하고 우리가 실패하면 세계의 웃음거리다. 한말에는 우리가 개혁이 늦어서 식민지가 되었다고 변명이라도 했지만 이제 무엇으로 변명할 것인가. 그동안 우리는 남북경쟁의 경험에서 사회주의가 판정패했고,또 한­미­일의 협력체제가 북한의 주체사상과 자주노선보다 우월했다는 점과 그것이 한국의 폭넓은 국제주의 때문인 것도 깨닫게 되었다. 얄팍한 반일 민족주의는 나라를 망친다.
우리는 이미 「일본의 전후」가 끝난지 오래고 다시 「세계의 전후」까지 끝났다는 일본인들의 인식에서 「새 일본」을 발견해야 하고 그들을 새 일본으로 대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일본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우리가 공급할 수 있는 수준높은 능력과 자세를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허세와 적당주의와 자기도취적 배타성을 청산하고 훈련된 사회로써 정직과 세심한 주의력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도우며 최선을 다하는 정성의 자세(일본인들의 습성)와 그런 제품을 말한다.
90년대의 8·15는 1945년의 8·15와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끼리 편가르고,또 일본을 규탄하는 과거지향의 궐기대회가 아니라 새 역사를 개막하며 한일간 개혁의 동지적 입장을 확인하는 「생각해 주는 8·15」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가슴속 깊이 일본이 무서워하던 그 억센 한국인의 기질과 대동단결의 「신바람」,그리고 「하면된다」는 신화에 불을 댕기는 「소생의 8·15」가 되어야 할 것이다.<이대·현 일본구주대 교환교수 정치학><후쿠오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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