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과 아름다움을 기록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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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30면

1867년 ‘하퍼스 바자’의 창간호엔 다음과 같은 선언문이 적혀 있다.
“동양적인 어법에서 ‘바자’는 생선이나 고기 등을 파는 통속적인 장터가 아니라 지구상의 진귀하고 값비싼 물건들을 모아놓은 광범위한 보물창고다. (중략) 우린 ‘하퍼스 바자’가 이러한 보물창고가 되길 바란다. 이 안엔 평범한 것과 아름다운 것, 여자의 힘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들 모두가 담겨 있다.”

창간 140년 맞은 패션지 ‘하퍼스 바자’

‘하퍼스 바자’는 140년 동안 이 선언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1891년 토머스 하디의 소설 ‘테스’ 연재를 시작으로 테네시 윌리엄스, 버지니아 울프, 레이먼드 카버, 스콧 피츠제널드 등 위대한 문학가들에게 지면을 할애했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마틴 문카치, 아티스트 만 레이의 화보·표지는 패션사진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앤디 워홀도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기여했다.

이러한 역사는 예술과 문학을 적절히 배치할 줄 알았던 카멜 스노에 힘입은 바 크다. 1940~50년대에 걸쳐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을 지냈던 그녀는 패션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 아트 디렉터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사진작가 리처드 아베돈과 함께 작업하며 ‘하퍼스 바자’에 예술성을 더했다.

90년대 ‘우아함의 시대로 들어오라!’고 외치며 황금기를 이룩한 편집장 리즈 틸버리스도 빼놓을 수 없다. ‘젠(Zen)’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미니멀하고 고요한 감각은 90년대 ‘하퍼스 바자’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하퍼스 바자’는 만드는 이들에게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고 마음껏 상상하게 하는 것을 즐긴다. 보다 대중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현재의 편집장 글렌다 베일리 역시 그 전통을 충실히 따르며 지적이고 우아한 패션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진귀하고 값비싼 ‘보물’들이 가득한 이 거대한 장터에서 마음껏 즐기고, 눈과 영혼을 위한 호사를 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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