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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추리기법 조화 돋보여|M-TV 납량특집극『칼 울음소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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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가야시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제사장인 천 군이 쓰던 칼이 있다. 용신 검이라 불리는 이 검은 살상용이 아닌 의식용으로 호국의 신통력이 있다고 해 숭배되었다. 그러나 제사장의 불륜관계를 아는 부족장이 이 검을 노려 제사장 침실로 침입했다가 오히려 제사장의 칼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어느 날 제사장이 천제를 지낼 때 용신 검에서는 갑자기 피가 흐르고 어디에선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면서 용신 검은 제사장의 손을 떠나 바람과 함께 증발한다. 그리고 1천5백여 년이 흐른 어느 날 밤 억수가 쏟아지는 깊은 산 속의 별장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신화의 세계는 정지되고 범죄의 세계가 새롭게 펼쳐진다. 신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용신 검을 호국의 상징이라 믿고 손에 넣으려는 일본의 사조직 신 가미카제와 이들의 하수인격인 국내 범죄조직, 그리고 이에 대항해 용신 검을 지키려는 평범한 두 남자.
MBC-TV가 8일 밤 방송한 납량특집극『칼 울음소리』는 욕심을 많이 낸 드라마다. 고전적인 납량 물인 귀신이야기의 음산함, 범죄 미스터리물의 팽팽한 긴장, 액션물의 박진감, 그리고 호수·바닷 속·동굴 등 계절에 맞는 배경이 주는 청량 감 등 여러 유형의 납량 물을 모자이크하고 있는 듯하다.
의욕이 강했던 만큼 이 드라마는 몇 가지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선 설화의 세계와 현대적인 추리기법을 결합한 독특한 구성방식이 새로운 TV극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다. 『전설의 고향』류의 완전한 설화적 세계는 우리 정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좋은 극의 소재지만 서사로만 구성할 수밖에 없는 소재의 특성 때문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지 못해 도태됐다. 『칼 울음소리』는『전설의 고향』의 정서에『영웅본색』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또 액션장면의 촬영에 있어 기존의 드라마에서 느껴 보지 못했던 박진감 있는 장면을 연출해 내고 있다. 스쿠버다이버들의 수중격투, 자동차 추격, 모터보트 추격 등. 특히 트레일러 밑으로 승용차가 통과하며 뚜껑이 다 날아가는 장면 등은 전문 스턴트맨이나 장비가 태부족한 여건에서 높이 사줄 만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엉성한 구성 때문에 과거·현대의 연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스토리부터가 분명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특히 백사여인·복면 쓴 무사는 정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설화적 상상력과 현대적인 기법, 기술의 만남은 그 시간적인 차이만큼이나 이질 스런 두 요소를 접목할 수 있는 치밀한 추리적 구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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