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쫓기며 재하청으로 “연명”/무등록·이전조건부 공장 르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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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수도권에만 5천5백여개 산재/자금적어 공단입주는 “그림의 떡”
지난 90∼91년 이전조건부로 등록을 받은 영세공장 9천여곳중 현재 이전을 마친 업체는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업체들의 이전시한이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그동안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3만여개의 무등록공장 문제까지 맞물려 해결책 마련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부처간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는 무등록·이전조건부공장의 실태·문제점·대응방안을 두차례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서울에서 일산방향으로 가다 국방대학원 우측으로 난 2차선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야산기슭에 축사를 개조한 허름한 블록건물·대형텐트 80여채가 차례로 눈에 띈다.
도로변 구멍가게에선 작업복을 입은 외국인 근로자 몇몇이 음료수를 마시는 모습도 보이고 건물 곳곳에선 기계소음과 화공약품 냄새도 흘러나온다. 「K건업」이란 팻말이 붙은 농가안으로 들어가자 마당에서 목재합판을 싣는 작업을 하던 직원 서너명이 경계의 눈길을 보낸다.
사장 이모씨(38)도 『물건 만들어 파는게 어디 죄라도 됩니까』며 언성을 높이더니 설명을 듣고는 『워낙 찾아와 못살게 구는 사람이 많아서 그래요』라고 말한다.
이씨의 공장은 화재방지용 불연칸막이를 생산,건설회사에 납품하는데 5년전 창업당시 마땅한 곳을 찾다 인근주민 반발도 없고 임대료도 싼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지역이 그린벨트다보니 관계당국의 단속도 심해져 이씨의 경우 벌써 여섯번이나 천막건물을 철거했다 다시 세웠고 각종 벌금도 헤아릴수 없이 내야했다.
이씨를 포함한 이곳 40여개 공장 모두가 무등록이고 이 때문에 공장건물이나 기계를 담보로한 은행대출은 꿈도 못꾸는 실정. 관공서뿐 아니라 대기업에 대한 납품도 불가능해 공장등록증이 있는 좀더 큰 공장으로부터 재하청을 받아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는 상태다.
고양공단내 이전조건부공장인 대동산업의 권영덕사장은 『골판지를 생산하는 공장성격상 최소한 3천평정도의 부지가 필요하나 정부가 조성한 공단에 입주하려면 분양금만도 20억원이 넘는데 어떻게 옮기느냐』고 반문한다. 이같은 무등록·이전조건부공장이 1백여곳이상 밀집한 지역은 이곳외에도 의정부일대·남양주군·서울 영등포·문래동·신정동·구로동일대 등 수도권내에만 20여곳 5천5백여개에 달하고 있다.
이들 공장이 현행법을 어겨가며 소음과 미관문제로 끊임없이 행정당국 및 주민들과 마찰을 빚어 이전을 서둘러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3D업종이 많은 부품생산·조립·임가공 등으로 우리산업의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 내몰수만은 없는 것도 현실인 셈이다.<고양=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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