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전문가들이 보는 남북 정상회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그린 전 미 NSC 보좌관
"북한, 핵은 포기 않은 채 경제 지원만 얻을 속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나타냈다. 남북 대화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자칫 북한이 핵문제 해결을 지연하는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냉정한 태도로 회담에 임할 것을 주문했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선임보좌관(조지타운대 교수)은 "이번 회담이 핵은 포기하지 않은 채 한국으로부터 경제 지원만 받아내려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전선동 전술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북한 측이 영변 원자로를 폐쇄하는 데 그치고, 남북 정상회담을 이용해 그 다음 단계인 불능화 이행을 피해 보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린 전 보좌관은 "김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이제 북핵 위기는 끝났고 한반도엔 평화가 도래했다'고 선언하며 경제 지원을 얻어낸 뒤 한국과 미국에 새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시간을 벌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함으로써 종국에는 국제사회로부터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 받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린 전 보좌관은 "따라서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수사에 현혹되지 말고 냉정하면서도 현실주의적인 입장에서 회담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담장에서 북한 측에 '핵 불능화를 이행하지 않고는 어떤 경제 지원도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김 위원장의 핵 폐기 의지를 재확인하도록 만들라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남북 정상회담은 성공작이란 평가를 받고, 6자회담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
"남북 교류 늘리는 계기 북한사회 개방도 촉진"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 겸 한.미연구소 원장은 "이번 회담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물꼬가 트인 남북 교류를 대폭 늘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회담 이후 한국이 북한에서 경제.사회 활동을 확대하면 북한 주민들이 외부 상황을 더 많이 알게 되고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그는 이번 회담이 북핵 해결이나 평화체제 확립에는 그다지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핵문제는 (6자회담이라는) 다른 틀에서 다뤄질 것이며 평화체제는 미국.중국 등 주변국의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일부에서 우려하듯 김 위원장이 비핵화 절차의 이행을 피하고자 회담에 응했는지는 이달 말과 다음 달로 예정된 6자회담 실무회의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정상회담에 합의한 배경을 묻자 그는 "한국의 경제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노무현 정권이 연말 대선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엔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설혹 그랬다 해도 한국민들이 이번 회담을 대선의 주요 기준 중 하나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선 "반대할 이유도 없고 그럴 위치도 아니다"고 했다. 미국 스스로 올 1월부터 북한과 활발하게 양자 회담을 하고 있는 데다, 이번 회담이 미국에 특별히 문젯거리를 만들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린 전 보좌관 역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문제로 바쁜 데다 6자회담이 계속 굴러가리란 확신이 있어 정상회담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