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해목적인가 단순강도인가/동기 아리송한 김문기씨 집 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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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범인 이례적으로 훔친돈 부풀려 언론에 제보/“도덕성에 또 상처” 경찰,원한관계 등 다각 수사
지난달 30일 발생한 서울 종로구 숭인동 김문기 전 의원(61·구속중) 집 강도사건이 당초 예상과 달리 단순강도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범인들의 범행동기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사건이 처음 접수됐을때 경찰은 ▲신고된 피해액이 8백여만원이고 ▲도난당한 007가방에는 서류가 들어있으며 ▲당시 가정부만 집을 보고 있었다는 가족들의 진술에 따라 일단 금품을 노린 단순 강도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경찰은 4일 도난당한 1백만원권 자기앞수표 수십장이 서울시내 곳곳에 뿌러진데다 범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언론사에 스스로 제보를 하는 등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자 원한 등 다른 동기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 남자는 사건발생 나흘만인 3일 몇몇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김 전 의원집에 강도가 들어 현금 10억원,패물 10억원어치,수표 7억원 등 무려 27억원어치를 털어갔다』고 제보했다.
이에따라 경찰은 김 전 의원이 비록 부동산 투기와 대학운영 비리 등으로 구속중이지만 평소 원한이 있고 내부사정을 잘 아는 주변인들이 김 전 의원이 여전히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세상에 알려 도덕적인 상처를 주려는 의도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의 이같은 판단은 4일 오전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도난수표가 집중적으로 뿌려지는 등 범인들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확대시키려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고 사건당시 범인들이 집안사정을 잘아는 것 같았다는 가정부의 진술에 따른 것이다.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때 기족들의 신고액(8백여만원)과 실제 피해액(현재 4억7천여만원으로 파악)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피해액이 세상에 알려질 경우 김 전 의원이 또한번 재산문제로 세상의 주목을 받게돼 여러가지로 난처할 것으로 판단,의도적으로 피해액을 줄여 신고했을 것으로 보이며 범인들도 이점을 노렸을 것이다. 또 이 수표를 발행한 한일은행의 계좌는 지난 3월 김 전 의원의 재산공개 목록에 포함돼 있지 않았고 발행일자가 재산공개 직후라는 점으로 미뤄 누락시킨 재산을 몰래 보관해왔거나 돈의 출처에 대해 가족들이 밝히기 어려운 사연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가족들은 피해액을 적게 신고하고 가방속에 수표가 있는지 몰랐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신고와 별도로 사건 다음날 수표를 발행한 한일은행측에 지불정지 요청을 하는 등 이미 피해 규모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단순강도에 의한 사건일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는 김 전 의원이 이미 비리사실이 드러나 구속된 상태로 비리사실이 드러나 구속된 상태로 정치적·사회적으로 처벌을 받고 있어 실제로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더라도 강도짓을 하면서까지 모험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강도의 경우 가능하면 범행을 숨기려 하는게 보통인데 수표가 비록 지불정지가 됐다 하더라도 길거리에 뿌려 세상의 이목을 스스로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을 큰 의문으로 남는다.
이 때문에 경찰은 일단 원한관계에 의한 주변인의 소행이라는 점에 더 비중을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윤석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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