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걸림돌 치워진 한­일관계/일,정신대 강제연행 시인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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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름대로 노력흔적”일단 긍정적/「총체적」등 모호한 표현 론란소지
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는 강제연행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군위안부라는 과거문제 때문에 한일관계가 계속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것이 양국의 국익에 해롭다는 인식아래 양국이 그동안 외교적 절충을 벌여온 결과다.
일본정부 발표문은 그동안 한국이 강력히 요구해온 ▲연행의 강제성 인정 ▲규모 등 전체실상 ▲사과 및 역사의 교훈 등에 관해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뚜렷하며 한국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어들이는 분위기다.
이번 발표는 일본 정부대변인인 관방장관의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담화문과 조사결과 발표문으로 되어 있다. 발표문에 나타난 일본정부의 입장은 일본이 지금까지 언급한 어떠한 사죄와 반성의 표현보다 강도가 높은 것이며 특히 역사의 교훈으로 삼겠다는 의지 천명은 역사인식을 재강조한 것으로 평가할만하다.
○역시인식 재평가
그러나 강제성 인정 부분의 표현,위안부 총수 등 전체 규모,앞으로 일본의 조치 등에 관해서는 미흡한점이 많다.
이 자료는 『광범위한 지역에 장기적으로 위안소가 설치되어 많은 수의 위안부가 존재한 것으로 인정된다』면서도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일본 학자들 가운데는 최소 8만명에서 최대 20만명의 군위안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자료가 없는 것은 당시 이를 문서로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고 패전후 이를 폐기했을 가능성 등을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91년 방위청 자료실에서 관련 문서가 발견된 사실에 비춰 그동안 일본이 보여준 무성의한 자세때문에 피해자들이 일본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기는 어려울 것같다.
또 위안부 모집부분의 경우 발표문은 『총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고 표현,해석 여하에 따라선 상당부분 자의로 간 사람도 있다는 말이 돼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퇴임을 하루 앞둔 미야자와 정권이 서둘러 이를 발표한 것은 강제성 인정에 따른 우익의 반발 등 새 정부에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행동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도 연립정권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모르므로 미야자와 정권과 과거사를 마무리하자는 차원에서 일본정부의 발표문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외교 현안이 될 수 있는 주요 과거사 문제는 일단 해결된 것으로 한일양국 정부는 생각하는 것같다.
○일 새 정부 짐덜어
현재 양국간에 남아 있는 과거사 문제는 ▲사할린 잔류 한국인 문제 ▲징용자 등의 생사 확인 ▲민간인 소송 등이 있으나 이는 자금 또는 인도적 차원의 문제로 양국 정부간 큰 외교현안은 아니라는 것이 양국 정부 관계자의 시각이다.
군위안부 문제의 경우 그동안 일본은 치부라는 이유로,한국은 경제개발에 관한 일본의 협력과 지원을 끌어낸다는 명목으로 서로 방치한 미해결의 문제였다. 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때도 한국은 교섭과정에서 이 문제를 거론만 했을뿐 구체적으로 조약 문구에 삽입하지 않았다. 한일기본조약은 청구권자금 8억달러로 모든 보상이 끝난 것으로 처리했다.
그러자 지난해 1월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 방한을 전후해 군위안부 문제가 크게 클로스업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다 끝난 문제를 갖고 트집잡는다고 소위 혐한론이 대두되고,한국에서는 일본정부의 무성의를 비난하는 여론이 높았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주로 위안소 설치·경영 등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공식 인정하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일본정부는 군위안부 강제 연행사실과 규모 등 전모는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이같은 일본정부의 발표에 불만을 표하고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를 하는 한편 지난 3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며 물질적 보상은 필요하지 않다』고 공식 천명했다.
그후 한국정부는 군위안부 출신에 대한 피해자 신고를 받고 구호조치를 독자적으로 취했다.
○궁택 개인소신도
전후 48년간 군위안부 문제를 외면하던 일본은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구축이 어렵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등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에 걸맞은 대국행세를 할수 없으며 ▲일본의 전쟁 책임을 알고 있는 미야자와 총리의 개인적 소신 등이 겹쳐 이 문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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