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비교한 우리의 현실(너무 뒤진 「인프라」: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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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허송 경제 발목 잡혔다/수출길목 적체… 연 2조손실
국제화·개방화시대에 국가간 산업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사회간접자본투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선진국 진입의 차질은 물론 21세기 우리 위상은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미 인프라스트럭처가 앞서있는 선진국들이 선두자리를 놓지않기위해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선진국들과 우리의 실상을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짚어본다.<편집자 주>
독일 남서부 슈투트가르트시의 벤츠자동차 본사에서 만난 간부의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독일은 도로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나라입니다. 사실 벤츠승용차는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좀 큰차입니다. 러시아워에 교통이 혼잡해지면 작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의도적인 끼어들기로 벤츠같은 큰차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냅니다.』
「도로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독일의 도로연장은 49만7천㎞. 5만9천㎞인 한국의 국토면적당 도로환산지수를 1백으로 할때 독일은 3백36이나 된다. 일찍부터 사회간접자본에 신경을 써온 영국의 35만7천㎞(환산지수 2백63)보다 형편이 낫다. 고속도로는 한국의 1천5백97㎞에 비해 5배가 되는 8천7백㎞. 철도를 보아도 한국이 3천㎞인데 비해 독일은 2만7천㎞로 9배에 이른다.
자기네 철도만으로도 모자라 독일은 인접국 고속철도의 연결을 추진중이다. 프랑크푸르트역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하며 얘기를 나눈 독 연방철도국 홍보관계자는 『유럽에는 3억2천만명이 몰려삽니다. 세계 어디에도 이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곳은 없습니다』며 철도확충의 시급성을 설명했다.
89년 독일을 비롯한 유럽공동체(EC) 12개 회원국과 오스트리아·스위스가 고속철도의 연결운행에 합의했다. 이 작업이 완결되면 고속철도 3만㎞가 유럽전역을 종횡으로 누비게 된다. 이중에는 서울∼부산간 고속철도를 겨냥해 입찰경쟁을 벌이고 있는 독일 ICE열차(최고시속 3백27㎞)와 프랑스 TGV(2백70㎞)를 비롯해 영국 인터시티(2백25㎞),이탈리아 ETR,스페인 TAV 등이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프랑크푸르트∼런던간은 현재의 10시간에서 5시간30분으로,파리∼콜로뉴는 5시간30분에서 3시간15분으로 거리 단축이 실현된다.
이미 2010년까지 교통부문에 5천억마르크를 투자할 계획인 독일은 EC통합을 계기로 자국 교통망을 유럽 전체의 네트워크로 확대함으로써 인프라의 효율성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EC 회원국들은 지난해 12월 정상회담에서 개별국가 및 민간부문의 개발자원과는 별도로 매년 3백70억달러를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냉전종식후 군사력경쟁과 이념대립에서 탈피해 각국이 경제적 이익과 경쟁력확보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설정해 놓고 있다. 국가경쟁력 확보의 전제는 사회간접자본의 구축에 있기 때문에 각국은 인프라확충에 치열한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도로·항만시설 수요 5년내 2배로/기회 또 놓치면 선진국 길목서 탈락
새로운 도로·철도·항만·공항·용수·전력·첨단통신 체제의 확충에 막대한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독일뿐 아니라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도 기존의 93∼98년 1천5백억달러의 교통부문 투자계획 외에 임기중 매년 2백억달러를 환경관련 기술개발 등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예정이다.
일본의 경우는 최근 발표한 경기부양책에서 「신사회간접자본」이라는 개념으로 교통망은 물론 정보통신망도 확충,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3조2천억달러의 재원을 금세기안에 투입할 계획이다.
선진국뿐 아니라 우리의 경쟁상대국인 대만·홍콩·싱가포르 등도 활발한 투자를 추진중이다.
예를 들어 대만은 91년부터 96년까지 3천억달러를 쏟아넣어 타이베이∼가오슝간 고속전철 3백40㎞ 및 고속도로를 건설중이다. 싱가포르는 항만,홍콩은 신국제공항의 대규모 확충을 추진중이다.
반면 한국의 「신경제」는 「내실있는 추진」을 기약(?)하면서 영종도 신공항건설과 경부고속전철을 2년정도씩 연기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얼마전 일본 경제신문은 『21세기는 대공항시대가 된다. 한국은 이에 대비해 인천항을 메워 활주로 3개의 24시간체제 국제공항을 98년까지 만든다.
일본은 94년 활주로 1개의 간사이(관서)공항을 완공할 뿐이다. 이때가 되면 많은 비행기가 상시 이착륙이 가능한 한국으로 가 일본은 일개 시골역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우려한바 있다.
듣기가 무색한 경계와 엄살이다. 워낙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역사가 길지 않았던데다 특히 지난 10년 허송세월한 탓에 우리의 인프라는 선진국의 절반,심한 부문은 5분의 1 수준에도 못미친다.
항만적체로 부산항에서 초래되는 경제적 손실이 한해 줄잡아 7천억원에 이른다(90년기준,대한상의 조사). 교통체증으로 인해 고속도로와 국도에서만 연간 1조2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90년기준,교통개발연구원 통계).
지난 85∼86년만 해도 ㎞당 고속도로 건설비는 30억원이었다. 용지보상비가 15% 안팎이었다. 이것이 지금은 2백억∼3백억원과 60%로 각각 뛰었다.
도로·항만시설의 수요는 5년내에 두배정도로 늘어난다. 재원이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선진국과 우리의 경쟁국들이 뛰는데 계속 미룰 수만은 없다. 5,6공때와 같은 투자부진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더이상의 기회상실은 선진국화에 뒷걸음치는 직무유기다.<한남규 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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