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나라에 자부심"|한민족 축전 참가 키르기스공 조 나타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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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29일 폐막된 93세계 한민족 축전의 청소년 행사를 위해 53개국에서 참가했던 2백86명의 청소년들은 30일 오후 올림픽 공원 펜싱 경기장에서 환송연을 갖고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비록 8일간의 짧은 고국 나들이였지만 세계 각국의 흩어져있는 2, 3세 동포 청소년들은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특히 키르기스에서 온조 나타샤양(20·비슈케크 국립 어문학대학3년)은『말로만 듣던 고국의 발전모습에 가슴 뿌듯한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조 나타샤는 할아버지가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사할린에서 1937년 키르기스 비슈케크에 정착하면서 삶의 뿌리를 내렸다. 3세인 조 나타샤는 조이글씨(42·건축업)의 1남2녀중 장녀. 그녀는 비슈케크 국립어문학대학 동방학부의 한국어과를 다니며 우리말을 익혔다.
「할아버지나라」에서 보고 느낀 것을 듣기 위해 조 나타샤를「스포츠초대석」에서 만났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국에서 배우고 느낀 첫 인상은.
▲사람들의 얼굴이 무척 밝고 거리는 활기에 넘쳐있어요. 그리고 잘사는 모습에 크게 감 명 받고 할아버지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비슈케크에 돌아가 할아버지 나라를 자랑하고 싶습니다.
-8일 동안 고국을 돌아보며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이 있다면.
▲우리 조상들이 과거에 살았던 모습을 재현한 용인 민속촌과 서울 남산타워에서 본 빌딩 숲을 이룬 서울광경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러나 오두산 전망대에서 남북의 분단현실을 보고 가슴 아팠어요.
-고국의 실상에 대해배우거나 들은 적은 있습니까.
▲고교시절까지는 한국의 역사에 대해 배운 적이 없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한국어과에 다니면서 비로소 할아버지나라에 대해 배우게 되었지요. 특히 서울 올림픽 당시 TV에서 때때로 비춰주는 할아버지나라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고국을 잊어가고 있는 자식들에 대한 부모의 걱정도 있고 고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한국어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한인3세로서 고국에 바라고 싶은 것은.
▲구 소련에서 독립한 키르기스는 과도기에 있어 사회·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고려인들의 생활도 어려워지고 있어요. 특히 요즘에는 키르기스가 러시아말 대신 키르기스 말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어 고려인들은 2중 3중의 고통을 겪고 있어요. 할아버지나라에서 키르기스에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합니다.
30일 대한항공 편으로 키르기스로 떠난 조 나타샤는 고국에서 부모님에게 선물할 향수와 크림을 샀다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조 나타샤의 표정은 어딘가 무겁고 침울해 보였다.<방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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