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전쟁과 평화 양쪽에 기여하는 과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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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갈릴레이 딜레마
장 자크 살로몽 지음
박지현 옮김, 이후
238쪽, 1만2000원

 전쟁은 정치인이 결정하고 군인이 수행한다. 하지만 그 기반인 살상 기술은 과학자가 제공한다. 핵·화학·생물 무기를 비롯한 ‘첨단제품’에서 개인화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기체계는 과학과 기술의 산물이 아닌가.

지은이는 과학자가 전쟁을 촉발하는 전사와 충돌을 억제하는 평화의 사도의 양면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실과 진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갈릴레오적인 갈등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과학자가 전쟁도구 개발참여에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부분 그 속에서 실익을 얻는 게 현실이다. 예로 2차 대전 직전 미국 IBM의 토마스 왓슨 회장은 나치 정권에 자사가 개발한 대형 원시 컴퓨터인 홀러리스를 제공했다. 이 컴퓨터는 나치 침략을 위한 군수물자 조달에는 물론, 유대인·장애인 말살을 위한 인구조사에도 도움을 줬다. 과학자가 개발한 기술이 돈에 팔려 나치에 대량학살을 위한 통계 정보와 기술적 토대를 제공한 셈이다. 어디 피 흘리는 전쟁뿐이랴. 지은이는 오늘날 과학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실제 전쟁의 대용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간 전쟁이 피비린내 나는 벌판에서 치열한 경쟁의 연구실로 옮겨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초로 지구를 한 바퀴 돈 구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나 달을 뛰어다닌 미국의 닐 암스트롱 모두 그 과학기술 전쟁의 아이콘이다. 뒤에서 연구했던 과학자들은 당연히 전사다. 그렇다면 이런 세계에서 과학자가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지은이는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을 든다. 그는 시온운동을 지지했지만 결코 이스라엘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 자리를 제의 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되려 이스라엘 건국으로 침해 받은 아랍인의 권리수호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과학자가 민족국가의 노예가 되는 것을 비판했으며, 한 나라의 국민보다 세계시민이자 보헤미안으로 살기를 원했다. 그게 진정한 과학자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경 없는 과학자 조직의 결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은이는 또 다른 예로 화학자 라이누스 폴링를 들었다. 그는 54년 양자화학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탄 데 이어 지상핵실험 반대운동 공로로 63년 노벨 평화상도 받았다. 학문적 업적과 정치적 참여 모두에서 노벨상을 탄 유일한 과학자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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