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김홍도·신윤복 그림에 상상력 덧붙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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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바람의 화원 1, 2
 이정명 지음,
 밀리언하우스
각 268쪽, 1만원

  상상력의 승리다. 출간 1년만에 35만부가 팔린 전작 『뿌리깊은 나무』가 역사서에 나타난 팩트에 근거해 이야기를 엮어낸 데 반해 신작은 10%의 팩트에 90%의 상상력을 버무렸다. 소재의 특성상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조선 후기 화풍을 주도한 천재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김홍도는 궁중화원으로 활동하며 1781년에 어진화사(御眞畵師)로 정조를 그리는 등 드러난 화가였다. 반면 신윤복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미미하다. 도화서(회화를 관장하는 국가 기관) 화원이었으나 속화를 즐겨 그려 쫓겨났다는 후문만 있을 뿐, 화원이었는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 역사에 글로 기록된 바는 단 두 줄뿐. 다만 그림만 남아 그의 생을 짐작케 한다.

지은이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들의 그림에서 추론을 시작한다. 그림들 하나 하나에 이야기를 붙이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엮어 장편소설을 써내려갔다. 서로의 재능을 흠모하면서도 경쟁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두 천재 화가. 그 이야기에 권력다툼에 의한 살인사건이 큰 줄기로 끼어든다.

 김홍도는 왕의 지시에 따라 10년 전 살인사건의 진상을 추적한다. 그림쟁이가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방법 역시 그림이다. 처음엔 살인사건과 관련 없는 듯 보이던 신윤복이 소설 뒷부분으로 가면서 깊숙이 개입돼 있음이 밝혀진다.

유명한 ‘미인도’를 비롯해 유난히 여인들의 모습을 화폭에 즐겨 담았던, 심지어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까지 그렸던 신윤복의 미술적 취향에 대한 지은이의 추리도 흥미진진하다. 갈대와 두 마리의 게를 그린 그림 ‘이갑전려’가 과거에 급제하기를 비는 부적의 용도로 쓰인 까닭 등 옛 그림 읽는 법도 덤으로 배울 수 있어 좋다.

혹여 책 첫 장을 읽은 후 마지막 장을 바로 확인해보는 습관을 지닌 독자라도 이번만은 참아주길 바란다. 소설 마지막 줄에 영화로 치면 초강력 ‘스포일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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