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붙이지 못한…』츠엉 투 후옹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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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5세 때인 1962년부터 미국이 패퇴할 때까지 12년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베트남 최고의 인기 여류작가 츠엉 투 후옹이 체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전쟁을 다룬 작품.
우리는 베트남전쟁에 관해 수많은 소설·영화·르포들을 접해왔다. 그러나 대부분 미국이나 한국에서 생산된 그 작품들은 베트남의 풍경, 자기들의 영웅적 투쟁과 죄책감만 위주로 했을 뿐 그들이 총을 겨눠야 했던 정글저쪽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은 그리지도, 또 그릴수도 없었다.
무엇이 베트남 사람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지독하게 저항케 하고 마침내 세계 최강의 미국에 역사상 최초의 패배를 안겨주게 했던가.『제목을 붙이지 못한 소설』을 통해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의 참모습과 사상, 그리고 민족성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10년 동안 죽음의 전쟁터를 헤매는 베트남의 젊은 중대장 콴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용맹스럽지만 내성적이고 예민한 정서를 지닌 그가 얼마간의 휴가로 전선을 떠나 고향으로 가면서 만난 북부베트남의 전선과 전시하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폭격을 피하기 위해 땅굴 속 삶을 사는 주민들. 낙하산으로 만든 의류와 침구, 비행기 파편들로 만든 빗이며 각종 용구.
미 군수물자의 파편들로 꾸려 가는 주민들의 일상과 함께 며칠간 풀칠조차 못했으면서도 군인을 배불리 먹이려는 주민과 전사들 사이의 형제애 등을 보여주면서 외세에 수없이 시달려온 이 민족이 어째서 전쟁에 승리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또 감수성 예민한 콴의 눈과 회상을 통해 베트남의 산하와 거기 사는 그들의 정서를 빼어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에서 마르크시즘의 허구와 공산당 간부들의 비리 등도 낱낱이 고발한다. 이 전쟁이 마르크시즘의 승리가 아니라 누누이 외세에 시달려 더는 갈 곳 없는 베트남 민족정신의 승리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90년 말 출간된 이 소설 때문에 작가는 베트남 공산당과 작가 동맹에서 축출되고 당국에 체포돼 고초를 당하기도 했으나 프랑스 독자들은 그녀에게 91년 권위 있는 여성문학상인 페미나상을 안겨 주었다.<동방출판사·3백10쪽·5천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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