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없는 성장' 시대 눈앞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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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 본점 2층의 한 숙녀복 매장. 각 제조업체에서 파견된 판매직원들만 분주할 뿐 제복을 입은 백화점 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30대 여성이 여성용 정장 한벌을 사고 신용카드를 내밀자 매장 직원이 즉석에서 결제를 한 후 영수증을 건네준다. 이전에 백화점 직원들이 손님들이 낸 돈이나 카드를 받아들고 계산대(POS)로 뛰어가 결제를 해오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백화점 측은 지난해 매장에 휴대용 개인정보단말기(PDA)를 설치했다. 이 PDA를 이용하면 계산대를 따로 거치지 않고도 중앙전산망에 고객 정보와 매출 상황이 직접 전달된다. 이 때문에 한층에 4~6개씩 있던 계산대의 숫자가 1~2개로 줄어들었으며, 자연히 인원도 반 이상 줄었다. 특히 매장당 한명씩 배치돼 상품 매출을 관리하던 직원들은 대부분 필요없게 됐다.

현대백화점 측은 "지난해 말 전국 13개 매장에 PDA 시스템을 확대하면서 인력 효율성이 30% 이상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는 올해 신입사원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매출 성장이 예상되지만 필요 인원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남는 인원을 다른 사무직으로 전환 배치하거나 자연감소 인원을 충당하는 데 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손바닥 크기만한 PDA가 가져온 변화인 셈이다.

최근 몇년간 급속한 성장을 하며 많은 고용을 창출했던 유통업계에 '고용없는 성장'이 현실화하고 있다. 특히 백화점은 할인점에 유통업계 1위 자리를 넘겨주며 가장 적극적으로 고용감축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일은 유통업계만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2일 발표한 '정규직 근로자 보호 수준의 국제비교' 연구보고서를 보면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고 짐작할 수 있다. 2001년의 경우 1% 성장 때 신규 취업자 수는 13만3천4백명이었으나 2002년에는 9만4천5백명, 지난해에는 3만6천5백명으로 떨어졌다. 1% 성장에 따른 취업자 증가율도 0.63%에서 2002년 0.44%, 지난해 0.16%로 낮아졌다.

지난해 8월부터 청량리점 등 일부 점포에서 PDA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인 롯데백화점도 올해 안에 전국 20여개 점포에 이를 확대한다. 이에 따라 매장관리 인원이 70% 이상 줄 것으로 보고 현재 전 직원들에게 사무직 및 다른 계열사로의 직무전환 신청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롯데는 올해 대구.전주에 신규 백화점 출점을 계획 중이지만 채용 인원은 오히려 줄였다. 회사 관계자는 "인건비가 대폭 절감될 것으로 보여 매출 부진이 계속된다 해도 경상이익은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세계백화점도 지난 2일부터 미아점에 이 시스템을 시험운영 중이다. 2월 광주점, 3월 강남점, 4월 인천점 등으로 확대한다.

김종윤.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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