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정권 발동… 새 정부 노동정책 분수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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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타율로 치닫는 「현대분규」/뿌리깊은 불신이 노사관계에 “암”/소모적 「준법쟁의」판단 최후카드
정부가 20일 현대 자동차 노사분규에 대해 긴급조정권을 발동함에 따라 울산 현대사태는 국민들이 우려했던 「타율에 의한 해결」국면에 접어 들었다.
노동부가 과거 정권때도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던 긴급조정이란 극약처방을 내놓게 된 데는 우선 이번 현대노사분규로 인해 파생되고 있는 막대한 경제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1조원을 넘어선 경제피해로 정부가 추진중인 신경제 구도에 타격을 입고있어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내에 확산되고 있는 위기의식이다.
정부는 특히 현대 노사분규가 조업과 파업·부분파업·태업 등 전략을 바꾸어가며 현총련의 조정에따라 그야말로 지능적으로 진행되면서 소모적인 장기전 양상을 띠고있어 맥을 끊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신경제구도 타격
과거 같으면 노조가 협상 결렬을 이유로 농성·점거·폭력을 구사해 곧 바로 공권력을 투입해 일시 불상사가 벌어지더라도 사태해결이 즉각 이루어졌으나 이번 분규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즉 겉으로는 평화적인 노사분규를 벌이고 있으나 안으로는 현총련이란 제3자개입에 의해 강성으로 치닫고 있어 이같은 경우 맞대응할 수 있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해결 방법은 긴급조정 발동이 최선이라는 최종분석이 나왔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자동차에 대해 긴급조정권을 발동한 것은 이 업체가 중공업과 함께 현대계열사 노사분규를 주도하고 있고,근로자 수도 3만명으로 가장많아 이 업체부터 정상화 시키면 다른 계열사의 정상화도 뒤따를 것이란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현대자동차의 경우 자체 매출손실액이 3천9백억원(수출차질액 1억2천8백만달러)에 달할 뿐 아니라 2천4백68개 협력업체(근로자 22만5천명)의 피해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이들의 생계보호를 위해서도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정부측 설명이다.
노동부가 긴급조정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현총련이 7일 총파업에 이어 21일 현대자동차 재파업을 선언한 14일께부터다.
노동부는 일단 긴급조정에 앞서 중앙노동위원회가 아닌 제3자에 조정을 맡기는 임의조정을 노사 양측에 적극 권장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하자 관련부처와 협의를 거쳐 마지막 카드를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이 노동호소 허사
이인제 노동부장관은 16일 울산 현장을 두번째로 방문해 노사에 대해 긴급조정권 발동을 암시하며 다시한번 자율적인 타결을 호소했으나 이 마저 물거품이 되자 정부의 방침은 급선회했다.
이에따라 일요일인 18일 오후 이해구내무·김두희법무·김철수 상공자원·이 노동장관과 청와대 관계자가 참석한 대책회의에서 긴급조정을 잠정 결정하고 19일 오전 박관용 비서실장이 김영삼대통령에게 보고함으로써 최종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타율 해결」 방법은 그러나 현재 현대계열사 노사분규가 적법한 절차를 밟고 있는 준법적인 쟁의행위여서 공권력 투입의 명분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긴급조정의 선택밖에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사는 최장 25일동안 쟁의행위를 중지해야하며 이 기간중에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사협상을 조정하게 된다. 중앙노동위의 조정이 성사되지 않으면 중앙노동위는 중재안을 마련하게 되며 이 안은 단체협약으로 효력을 갖게된다.
그러난 긴급조정 아래에서도 노사 당사자간은 협상을 벌일 수 있고 노사간 단체협약이 타결되면 그것으로 긴급조정 상태는 끝나게된다.
따라서 긴급조정권이 발동된다하더라도 노사간의 타협 가능성은 계속 남게돼 현대 노사분규는 아직 평화적인 해결 여지는 남아있는 셈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긴급조정이 근로자에게 불리한 것만이 아니다』며 『이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효과적인 결과가 나올수 있어 긴급조정에서도 노사자율 해결을 위한 지도는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준법적인 쟁의행위임을 강조하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이미 정부의 긴급조정에 반발하고 있어 앞으로 「타율 해결」 국면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최악사태 가능성
긴급조정 아래에서는 노조가 이에 반대해 어떤 집단행동을 한다면 곧바로 공권력 투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공권력 투입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 벌어짐으로써 현대자동차 노조의 반발이 다른 계열사 노조로 확산돼 과거 정권하에서 익히 보아왔던 근로자와 정부간의 물리적인 정면 대결이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결국 그동안 신노동정책을 통해 「근로자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임을 강조해온 노동부는 이번 긴급조정으로 상당한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아울러 이번 결단은 새 정부 노동정책의 일대 전환을 의미하는 중요한 분수령을 이룰 것으로 보여 지대한 관심사로 주목되고 있다.<제정갑기자>
□현대분규 사태 일지
▲5·22=현총련 「93년 공동임투 전진대회」
▲6· 4=현대정공 김동섭위원장 임금협상 직권조인
▲6· 5=현대정공 노조 전면 작업거부 돌입
▲6·10=현대정공 노조 쟁의행위 결의
▲6·15=현대자동차 쟁의행위 결의,현대목재 쟁의발생 신고
▲6·16=현대자동차 부분파업,현대중장비 태업 돌입,현대중전기 쟁의행위 결의
▲6·17=현대강관 쟁의행위 결의
▲6·19=노동부 노사분규 적극개입 선언
▲6·21=경제기획원·상공자원부·노동부 3부장관 대국민 호소문 발표
▲6·22=이인제 노동부장관 울산 방문,현대강관·현대중전기 조업 개시
▲6·30=현총련 「그룹 대화 불응이면 총파업」 선언
▲7· 2=김영삼대통령 재벌총수 청와대 만찬서 중대결심 선언,대 검 단병호 전노협 의장 검거령
▲7· 5=대검 현총련 간부 등 6명 검거령,이 노동 제3자개입 불용방침 발표
▲7· 7=현대자동차 등 7개사 총파업
▲7·16=이 노동 두번째 울산방문서 타율 해결 가능성 시사
▲7·19=노동부 긴급조정권 발동 관련 중앙노동위 의견 조회
▲7·20=이 노동 긴급 조정결정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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