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학 도입 주체적 길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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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달의 문화인물로 지정된 송촌 지석영선생의 업적을 의학사적으로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의사학회 주최로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열렸다.
학술대회에서 서울대 보건대학원 허정교수는 『신라 선덕왕과 문성왕이 천연두로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등 그 피해는 참으로 컸다』며 『지선생의 공로는 1879년 우두를 공식적으로 최초 도입한데 그치지 않고 일반에 적극 보급, 국민보건에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 우두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사람은 다산 정약용선생』이라며 『다산은 서양학문을 연구, 1835년께 비공식적으로 인두법과 함께 우두법을 시도한 것으로 짐작은 되나 확인은 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허교수는 『전통만 고집하던 시절 과감하게 새로운 서양의학을 받아들인 데서 지선생의 선각자로서의 가치가 빛나며, 특히 최초접종자가 당시 두 살이던 처남이란 데서 종두법 개발자인 영국의 제너가 자신에게 처음 주사한 것과 비견된다』고 말했다.
의사학자 기창덕씨(치과의사)는 『지선생은 흔히 우두 보급자로만 알려져 있는데 그는 과거에 급제한 관리로 1885년 한성순보에 의학당의 필요성을 주장한 글을 게재하는 등 서양의학교육의 도입을 추진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노력으로 1899년 관립 의학교가 세워졌고 1902년 임상실습을 위한 최초의 의학교 부속병원까지 설립됐다. 이 학교는 1903년 임상실습을 마친 첫 졸업생을 냈고, 대한제국 국호가 든 졸업장을 5기생에게까지 수여했다. 기씨는 『선생 같은 선각자가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서양의학도입은 주체적인 모습을 띠게 됐다』고 평가했다. 선생은 의학교초대 교장을 지내고 한일합방후 의생면허를 받고 전선의생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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