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연 'IAEA 사찰 증거물 우라늄' 분실 석 달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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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자력연구원의 우라늄 분실은 직원들의 어처구니없는 업무 태만 때문에 빚어졌다.

연구원이 밝힌 우라늄 분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5월 레이저 실험실에 새로운 연구장비가 들어와 공간 재배치 공사를 하자 각종 폐건축자재가 나왔다. 연구원은 이 쓰레기 처리를 폐기물 처리업자에게 맡겼다. 폐기물 처리업자는 우라늄이 들어 있는 노란 박스를 폐기물인 줄 알고 가져가 다른 쓰레기와 함께 신탄진 쓰레기매립장에 버렸다.

신탄진 매립장에서는 우라늄을 태워야 할 쓰레기로 분류해 안산 소각장으로 보냈고 여기서 소각됐다. 연구원은 우라늄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조사하다 폐기물 처리업체로부터 이 같은 설명을 들었다.

소각장에서는 보통 쓰레기를 5분쯤 태운다. 이 때문에 연구원 측은 금속으로 된 우라늄이 타지 않고 원형대로 보존됐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소각재를 매립한 김포 매립장에서 우라늄을 찾고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우라늄을 다른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중앙관리실 같은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하나 분실된 우라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 물증이어서 레이저 연구실에 뒀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2000년에 레이저 실험실에서 우라늄 분리실험을 해 농축률 10%의 우라늄235(0.2g)를 추출했다가 2004년부터 IAEA로부터 사찰을 받는 중이다. 사찰을 받을 때는 우라늄을 추출한 장소에서 옮기면 안 된다.

문제는 연구원 직원이 아닌 외부인인 폐기물 처리업자가 국가 중요기관에 들어와 폐기물을 수거하는데도 감시를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특히 연구실 안에서 우라늄을 안전하게 보관하지 않고 방치해 폐기물 처리업자가 우라늄을 폐기물로 오인한 것이다.

게다가 연구원은 지난 3개월 동안 우라늄이 없어진 줄도 몰랐다. 연구원은 6일 우라늄이 없어진 사실을 뒤늦게 알고 과학기술부에 보고했다.

원자력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평소 연구원들이 우라늄을 가까이 하다 보니 안전불감증에 걸린 것 같다"며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은 제3자가 우라늄을 훔쳐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대전=서형식 기자

◆한국원자력연구원=과학기술부가 출연한 원자력 전문 연구기관. 원자력의 기초.기반 기술, 미래형 원자로와 핵연료, 방사선 응용과학, 원자력 설비와 환경의 안전성 같은 분야의 연구개발을 임무로 한다. 1959년 원자력연구소로 출범했다. 그동안 중수로.경수로 핵연료의 국산화, 세계적 수준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의 설계.건설, 한국 표준형 원전(KSNP)의 개발 같은 성과를 거뒀다. 현 박창규(56) 원장은 서울대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MIT대에서 석사, 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과학분과위원장, 원자력연구소 신형원자로개발단장.원자력수소사업추진단장을 역임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와 국제적인 공동관리를 위하여 설립된 국제기구. 1953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국제연합 총회에서 제안하고, UN 회원국 80개국이 설립헌장에 조인하면서 57년 발족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근거로 핵무기 비보유국이 핵연료를 군사적으로 전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핵무기 비보유국의 핵물질 관리실태를 점검하고 현지에서 직접 사찰할 수 있다. 본부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으며 회원국은 144개국이다. 한국은 57년에, 북한은 74년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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