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본심은 … "대북외교 초점은 6자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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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 미국의 의중이 분명해졌다. 정상회담이 6자회담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7일 오후(현지시간) "정상회담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날 오전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회담은 환영할 만한 긍정적 행보다. 그러나 북한과 관련한 우리 외교 노력의 주요 초점은 6자회담"이라고 강조했다.

회담 개최 사실을 통보받은 직후인 7일 오후 힐 차관보가 절제된 표현으로 미국의 희망을 피력했다면 다음날 오전 매코맥 대변인은 보다 직설적인 어법으로 미국의 의중을 밝혔다.

매코맥 대변인은 "북한이 정말로 핵을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렸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모든 외교 노력의 진짜 무게중심은 6자회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몇 차례나 반복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의 로드맵인 2.13 베이징 합의가 겨우 초기 이행단계에 있는 지금은 모든 초점이 6자회담에 맞춰져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비슷한 시간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는 "그동안 6자회담의 맥락에서 당사국 간에 양자회담 기회가 있었다"며 "남북 정상회담은 그런 전반적인 모델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담은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6자회담을 계속 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평양회담이 6자회담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미리 쐐기를 박은 것이다.

힐 차관보가 8일 오전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를 만난 것도 그런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말했다. 소식통은 "미국은 평양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앞서 나갈 가능성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건 평양회담이 6자회담의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깨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이 북한에 대규모 경제 지원이나 경수로 지원을 약속하거나, 아직은 논의하기 이른 한반도 평화 체제를 남북한 주도로 현실화한다는 등의 선언을 하는 경우다. 이러면 미국과 한국.중국.러시아.일본이 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면서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식의 6자회담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걱정이다.

따라서 미국은 평양회담 의제에 대해 한국과 사전 협의를 하자고 요구하고 나설 수도 있다. 주미 대사관 관계자는 "2000년 5월 김대중-김정일 회담을 한 달 앞둔 때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웬디 셔먼 국무부 조정관을 서울로 보내 의제를 조율하게 했다"며 "이번에도 미국은 어떤 의제를 어느 선에서 다루는 게 바람직한지 자신들의 판단을 한국에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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