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株에 수십만원 "비싸서 못사겠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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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5백만원 갖고는 살 주식이 없더군요."

연말정산으로 환급받을 세금과 설 보너스로 주식 투자를 해볼 생각에 인터넷을 뒤지던 회사원 金모(34)씨는 마땅한 종목을 찾기가 어렵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살 만한 주식들은 대부분 5만원이 넘는 고가주여서 투자하기가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시장을 주도하는 삼성전자는 최소 주문 단위인 10주를 사는 데 12일 종가로는 5백5만원이나 필요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싹쓸이로 유통주식 수가 갈수록 주는 것도 개인투자자들의 설자리를 좁히는 요인이다.

◇개인에게 높아진 증시 문턱=지난해 개인들은 줄기차게 주식을 팔았다. 순매도(판 금액-산 금액) 규모가 5조8천7백70억원이나 됐다. 투신사 펀드의 절반 이상이 개인자금인 점을 감안하면 개인들은 지난해 10조원에 가까운 주식을 처분한 것이다.

이처럼 개인들이 주식을 처분하는 동안 지난해 삼성전자는 연초보다 38%나 오르며 '황금알'로 변했고, 농심은 연초보다 세배나 오르는 '대박'을 터뜨렸다. 외국인들은 이처럼 뛰는 말을 잡으며 올 들어서도 삼성전자 등 알짜주를 사들이며 순매수 2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개인들은 이런 종목에는 투자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LG투자증권 박윤수 상무는 "주식의 절대가격이 너무 비싸고 유통물량이 크게 줄었다"며 "이렇게 살 만한 주식들은 비싸기 때문에 개인들은 중소형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알짜주들은 외국인들의 '전유물'로 고착되고 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개인들은 지난해부터 주가가 오를 때마다 단기차익에 급급해 고가주를 외국인들에게 넘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거래소시장 시가총액 비중은 지난 9일 사상 처음 41%를 초과했다.

◇가격 부담 낮은 선진국 증시=지난 9일 현재 국내 증시에서 고가주로 분류되는 5만원 이상 주식은 모두 59개 종목으로 집계됐다. 이는 우선주를 제외하고 액면가를 5천원으로 환산한 결과로 액면가에 관계없이 절대가격 기준으로 5만원을 넘는 주식은 36개였다.

종목수는 적지만 이들 종목의 위력은 대단하다. 대신증권 김영익 투자전략팀장은 "삼성전자 한 종목이 시가총액의 25%를 움직인다"며 "삼성전자.SK텔레콤.국민은행 등은 외국인.대주주.기관투자가들의 지분을 빼면 유통물량이 10% 안팎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미국 뉴욕 증시에서는 1백달러를 넘는 종목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 꼽히는 인텔의 주가는 지난 9일 34달러(약 4만원)를 기록했다.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로 보면 삼성전자는 12배에 불과해 인텔(49배)보다는 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영기 교수는 "PER만 보면 국내 주식들이 저평가돼 있지만 절대가격은 부담스러울 만큼 높다"며 "액면가 없이 시가로 발행되는 미국 주식들은 주식 분할을 통해 꾸준히 가격 부담을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도 최근 삼성전자를 예로 들며 "개인의 증시 참여 활성화를 위해서는 액면분할을 통해 개인들의 접근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랜드마크투신운용 최홍 사장은 "유통물량이나 가격 때문에 직접투자가 부담스러운 개인들은 간접투자를 통해 분산투자의 효과를 얻는 것도 증시 장벽을 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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