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교 폭파-"문단에 『반공주의』부추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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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남한문학을 반공주의일변도로 빠뜨리게 한 직접적인 계기는 한강인도교 폭파였다.』
문학평론가 이선영씨(연세대국문과교수)는 최근 내놓은 논문 「한국문인의 공간이동과 작품성향에 관한 연구」에서 이같이 주장, 주목을 끌고 있다.
이씨에 따르면 한강다리 폭파와 잘못된 보도로 피난가지 못하고 적치하 서울에서 3개월을 버텨낸 비도강파 문인이 9·28수복 후 돌아온 도강파 문인들로부터 사상성을 의심받으며 사상등급심사까지 받게되자 너나없이 앞다퉈 반공주의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 다리 폭파로 야기된 이데올로기 공포증이 이후 남한문학을 반공주의 일변도로 흐르게 하고 현실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크게 훼손시켰다는 주장이다.
이씨는 반면 전쟁말기인 53년초부터 벌어진 남로당 작가숙청이 북한문학을 당 문학 일변도로 흐르게 했다고 강조했다. 패전의 속죄양으로 남로당계열이 숙청되고, 특히 임화 등이 미제간첩 혹은 부르좌문인으로 처벌되면서 북한문단은 부르좌 반동문학 공포증에 빠져 경직된 당 문학 일변도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8·15부터 전선이 고착돼 남북의 넘나듦이 불가능해졌던 51년 6월 사이의 문인들의 남북이동 상황과 원인, 그리고 작품성향을 분석한 이씨의 이 논문은 특히 88년 해금조치 이후 월·납북문인에게만 치중됐던 연구에서 월남문인에게도 시선을 돌리고 있어 주목된다.
시인 구상·김규동·김동명·박남수씨, 소설가 김성한·박연희·선우휘·안수길·이범선·이호철·정비석·황순원씨 등이 월남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북한의 김일성 집단에 의한 전격적인 토지개혁. 46년 3월 북한의 토지개혁 직후부터 문인들의 대거 월남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이를 잘 입증한다. 토지개혁과 같은 북한의 급진적·계급적 정책에 반대, 월남한 문인들은 그러나 남한의 현실에도 결코 만족할 수는 없었다.
독립운동가들을 잡아가던 친일고등계 형사들이 숙청 당하기는커녕 공산주의자·민족주의자를 잡아들이는 남한의 현실에 맞닥뜨린 그들은 작품을 통해 이를 매우 비판적으로 형상화한다. 이처럼 해방공간에서의 월남문인들의 현실비판의식과 작품활동은 서정주·김동리·조연현씨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재남 작가들의 현실 외면적인 순수문학과는 분명 달랐다. 강한 현실비판의식과 동시에 월남문인들은 남북한 어디에도 자신들이 동경하던 세계가 없다는 것을 차츰 깨달아가며 고향상실의 허무주의 늪에 빠져 실존주의에 경도 되게 된다.
반면 친일파 숙청·부정부패척결·토지개혁과 같은 급진적 정책에 지지를 보내며 북한을 택한 게 월북작가들. 시인 박세영·오장환·이용악·임화·조영출씨, 소설가 김남천·김사량·박태원·홍명희씨 등이 그들로 남한의 정치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월북한 이들은 「진정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낭만적 혁명주의 경향」을 나타냈다.
자신의 의지·양심에 따라 남과 북의 공간을 택했고 작품활동을 폈던 이들 문인들은 그러나 한강다리 폭파·남로당 숙청 등 6·25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민족적·민주주의적 현실인식의 작품활동을 포기 당하고 반공주의적·반자본주의적이라는 편협 된 이데올로기의 평행선만 그었다는 게 이씨 연구논문의 결론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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