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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주점이 웬말인가(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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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새 정부의 각종 행정규제 완화정책들이 대다수 국민이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강구되기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작금의 시정현상들 중에는 국민 일반보다는 소수 이해 당사자의 이익 위주로 취해지는 인허가조치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어 걱정스럽다. 관계당국의 일관성없는 유흥업소 정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보사부는 최근 상업지역으로 국한돼 있던 이른바 단란주점의 영업허가를 준주거지역과 주거지역에까지 확대키로 방침을 정했다. 이는 정부의 행정이 다수 국민의 안락한 생활환경 보다는 몇몇 술꾼들의 주흥을 더 존중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 명칭마저도 야릇한 느낌을 주는 『단란주점』이라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는」 유흥장이라고 한다. 술마시고 노래부르기 좋아하는 행태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굳이 주택가에까지 꼭 있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이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당국은 단란주점의 소음을 사람들이 얘기하는 수준인 45데시벨 이하로 규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술취해서 부르는 노래가 자장가처럼 조용할리도 없을 뿐만아니라 소음단속과 규제가 제대로 실시되리라고 믿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단란주점에는 여자(호스티스)를 두지 못하게 돼있다. 그러나 이미 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우후죽순처럼 성업중인 이들 업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변태·불법영업의 행태에서 보듯 앞으로 단란주점안의 퇴폐행위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단적인 예로 전국의 도시에 산재해 있는 퇴폐이발관들이 어디 당국의 허가를 받고 하는 업태들인가 묻고 싶다. 당국의 허가도 나기 전에 영업하고 있는 단란주점이 서울시내에만 이미 2천여곳에 이르고 그중 85%인 1천7백여곳은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고 서울시 집계는 밝히고 있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허가이후 단란주점의 주택가 집중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상업지역 보다 주거지역으로 분류된 곳의 건물임대표가 훨씬 싸기 때문이다.
당국이 단란주점의 허가지역 범위를 상업지역으로 국한해 고시했을 때도 주거지역에서 영업을 시작하는 상인들의 의도는 일을 벌여놓고 업자들끼리 집단민원을 제기하면 결국 당국이 허가해줄 것이라는 배짱에서 비롯되었다. 당국의 허가지역 확대조치는 결국 이들의 배짱에 굴복한 결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주거지역은 주거지역답게 정숙하고 안락한 분위기가 보장돼야 한다. 술집이 들어서면 그 분위기는 깨지게 마련이다. 주거지역 안의 주점허가 방침은 취소돼야 마땅하다. 당국이 판단하기에 지역용도의 분류가 잘못됐다면 용도를 변경할 일이지 업자들의 집단민원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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