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시비」밀러의 삶과 문학|『자유로운 악마』미에리카 종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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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시인 에리카 종은 지난 73년 여류작가로는 드물게 첫 소설『나는 것이 두렵다』로 외설시비에 휘말렸던 소설가로도 유명하다. 당시 종을 옹호하는 대열에 앞장섰던 인물이 바로 섹스문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소설가 헨리 밀러 이었다. 종은 노골적인 성 묘사로 문제가 되기도 했었지만, 페미니즘운동이 한창이던 때 여성다움을 강조하고 나서 패미니스트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 종이 이번에는 밀러에 보답이라도 하듯 밀러의 삶과 작품세계를 분석한 책을 발표, 미 문단의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책은『자유로운 악마』(The Devil At Large·랜덤하우스간). 이 책에서는 밀러가 대부분의 작가들이 기피했던 거친 언어까지 문학 속으로 포용했을 뿐 아니라, 유물주의적 현실에서 끊임없이 정신을 추구했던 뛰어난 작가로 재평가 받고 있다.
이 책은 또 종이 과감한 성 묘사로 외설시비를 겪던 때인 지난 73년부터 밀러가 타계할 때까지 종과 밀러가 주고받은 편지까지 싣고 있어 그들의 예술관과 인생관까지 엿보게 한다.
밀러는 지난80년 88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대부분의 작품에서 성기와 성행위 장면 등을 그림 그리듯 노골적으로 묘사, 포르노냐 문학이냐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었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고국 미국에서는 발표 후 수십 년 동안 금서로 묶이는 불행을 겪어야만 했다.
제임스 조이스 등 한때 외설시비를 불렀던 작가 대부분이 뒷날에는 학자들로부터 문학적 성취를 높이 평가받았다. 그러나 밀러 만은 줄기차게 섹스에 초점을 둠으로써 학계, 특히 여성 비평가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종은 한 여성으로서 처음엔 밀러에 대한 혐오감은 어쩔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종의 그같은 시각은 밀러가 가혹할 정도의 비난 속에서도 꿋꿋이 섹스에 매달리도록 한 그 힘이 무엇이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크게 바뀌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밀러는 20년대 뉴욕브루클린의 빈민가생활, 30년대 파리에서의「추방」생활, 40년대 할리우드 화가생활, 50∼60년대 뉴에이지운동 등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이 종의 평가다.
밀러가 끊임없이 섹스에 매달린 것도 이런 인생유전에서 섹스가 가장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은『밀러가 섹스표현마저 억제했더라면 다른 모든 감정도 시들었을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다.
이 때문에 밀러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노골적인 성 묘사에 대해 변명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독자들이 『삶은 추잡하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도 한 것이어서 어떤 변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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