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혼』6년만에 "햇빛"-화제의 시나리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시대를 앞서간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드라마화되지 못하던 화제의 시나리오『떠도는 혼』이 6년만에 드라마로 제작됐다.
24일 밤10시부터 90분간 KBS-1TV를 통해 방송되는 『떠도는 혼』은 현재 경찰청 공보계장으로 재직중인 작자 성동민씨가 육군 정보사령부 소령시절 대북심리전을 담당했던 경험을 살려 쓴 작품.
87년 동아일보 시나리오 당선작으로 결정되면서 알려진 이 작품은 남한으로 표류해온 북한 소년이 새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북쪽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분단의 비극을 이념적인 편견 없이 보여준 수준 높은 시나리오로 호평을 받았었다.
87년 신문당선작 87년 당시 여러 군데서 드라마로 제작하려고 시도했으나 사회분위기 때문에 결실을 보지 못했던 『떠도는 혼』이 이번에 햇빛을 보게 된 것은 시대상황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독립제작사인 제일영상이 이념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순화시켜 내놓았기 때문.
이 작품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내용은 북한에서 본의 아니게 표류해온 소년 석이를 정보기관에서 의거 월남한 것으로 조작해 대대적으로 선전에 이용하는 부분.
또 석이가 북한에 있는 부모들을 찾아 유조선에 매달려 탈출을 시도하는 부분과 석이의 표류사실을 처음으로 기사화 했으나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의거월남으로 각색된데 분노한 주인공 표기자가 석이 송환운동을 벌이는 부분 등이다.
제일영상측은 촬영대본 작성 때부터 이런 부분에 대해 톤을 낮추는 등 「방송 가능한 작품으로 만들자」는 방침으로 제작했으나 제작과정에서 여러 차례 주위 「시어머니들」로부터 직간접적인 압력을 받고 세 차례나 대본을 수정하는 촌극을 벌여야 했다
이러다보니 이번에 선보이는 『떠도는 혼』은 분단상황의 비극을 리얼하게 보여 주려한 원작의 「분단의 세계」보다는 석이와 석이를 처음 발견한 섬소녀 순이의 우정을 담은 『동심의 세계」에 무게중심이 쏠리게 돼 버렸다.
동심세계에 비중연출을 맡은 제일영상의 심현우 사장은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는 여건이 안돼 서정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연출했다』며 『다소 수정된 부분이 있어도 이념적 편견을 갖지 않고 묘사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편 『떠도는 혼』에는 영화『서편제』에서 극중 송화(오정해 분)의 아버지로 등장했던 김명곤이 주인공 표기자로 나오고 염정아·강부자·박혜숙·김희라 등이 출연한다. <남재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