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항쟁」세계 영향 론|정선구<국제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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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율곡비리」「슬롯머신사건」을 둘러싼 과감한 부패척결, 대대적인 군부 숙정 등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김영삼 개혁정부의 쾌도난마가 중남미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정반대지만 정치에 관한 한 상황이 비슷해 오랜 군부독재·민주화열풍을 같이 경험한 양측에 최근 문민정부의 잇따른 탄생과 그에 따른 일대 개혁 풍이 불고 있는 것이 흡사 약속이라도 한 듯 하다.
이런 가운데 김덕룡 정무장관의「6·10항쟁 세계정치 영향 론」이 주목된다.
김 장관은 지난4일『김영삼 대통령이 주도했던 6·10항쟁이 동구의 변화를 선도했으며 필리핀과 중남미 등 세계정치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변화는 같이 겪어 왔지만 우리나라가 그 변화를 선도했다는 논리다.
김 장관의 발언처럼 정말로 6·10항쟁이 이들 나라의 민주화를 이끈 지도자들에게「한 수 지도」나 「훈수」가 됐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올해 김 대통령 취임 후 이들 지역 국가원수들이 잇따라 내한해 김 대통령을 예방,『김 대통령의 개혁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한 것을 보면 김 장관의 발언은 절묘하고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난달 23일 필리핀의 피델라모스 대통령이 한국을 찾았고 남미 페루에서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2일 2박3일간의 일정으로 다녀갔다.
김 장관의 말대로 라면 이들은 한결같이 금대통령 주도의 6·10항쟁에 큰 영향을 받은 나라들의 지도자들인 셈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이들 국가에 영향을 줬건 안 줬 건간에 중남미에서는 민주주의와 문민정치의 열풍이 뜻밖의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페루에서는 5년 단임의 후지모리 대통령이 개인의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발판으로 탱크를 앞세워 의회를 해산하는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임기 연장음모」라는 국제적 비난을 샀다.
과테말라에서는 역시 문민정치를 시작한 호르헤 세라노 대통령이 헌정중단을 시도했다가 권좌에서 물러났으나 군부강경파가 요직을 장악, 정정 불안을 보이고 있다. 그 밖의 다른 중남미국가들에서도 엇비슷한 정정 불안이 일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이 엿보인다. 같은 문민정치의 길을 걷고는 있지만 저쪽에서는 처방이 지나쳐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취임 1백일에 즈음한 기자회견에서『절대로 개헌하지 않겠다. 성역과 중단 없는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일단 남미에서 나타난 헌정중단·문민독재 등 문민정치의 부작용우려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직장에서, 학교에서 혹은 술자리에서『YS개혁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라는 토론이 열띠게 벌어지고 있는 요즘 우리는 과거 경제위기 때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남미의 교훈」을 곱씹어 봐야 한다.
그것은 김 장관의「6·10항쟁 영향 론」에서처럼 우리가 동구권이나 필리핀, 남미 등에 발전적인 영향을 줄지언정 이들에게서 퇴보 성 영향을 되받아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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