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학생시위대책 계파 시각차/확대 당직자회의서 열띤 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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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불순」개입… 강경대처 목소리높여/민정 공화/대결구도 우려 대화로 해결 강조/민주
14일 열렸던 민자당 확대당직자회의는 묘한 시점에 매우 민감한 문제를 다루어 시작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당초 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던 회의가 회의도중 비공개로 바뀌고,1시간 넘게 열띤 토론을 벌이는 등 평소와 달랐다.
민정·공화계의 목소리는 경찰관의 죽음을 부른 학생시위에 대한 강경한 시각에서부터 비롯됐다.
『학생운동은 학생신분을 벗어났다. 친북한 불순세력이 개입돼 있기에 단순한 학생시위로 봐서는 안되며 지하의 실태를 파헤쳐야 한다.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면 신한국 창조에 악영향을 줄 것이고,노동운동과 연결될 경우 경제활성화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날 사건의 진상을 보고한 민정계 서정화의원(내무위원장)의 분석이다. 학생운동을 「순수한」 것이 아니라 친북한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불순한」 것이라는 기본적 시각이다.
그러나 민주계의 시각은 달랐다.
『정당이 지나칠 정도로 정치적 대응을 한다면 자발적으로 공분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줄수 있다. 수사진전을 보면서 정부는 정부대로 당은 당대로 대책을 마련하면서 당정협의를 거치도록 하자.』
김덕용 정무1장관의 신중한 반응은 정부가 당초 대책회의를 치안관계장관 긴급대책회의로 하려다가 간담회로 격을 낮춘 의도와 같은 맥락이다. 이는 국민의 지지여론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생운동을 보다 순수한 동기로 해석하는 시각이 깔려 있다. 이는 어이진 다른 민주계 당직자들의 목소리에서 보다 선명하게 확인된다.
『기성세대들이 학생들과 대화노력을 계속했느냐는데 대해 반성도 해야한다. 대화노력에 힘쓰자.』(황명수 사무총장)
『학생과 경찰이 대결구도로 나가면 학생들까지 불행한 사고를 당하는 등의 어려운 국면으로 갈까 걱정된다. 학생들을 폭력시위 주동자로 취급하기보다 교육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대화의 상대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백남치 기조실장)
개혁의 실세들인 민주계가 이 정도의 한목소리로 주장을 펼 경우 대다수 참석자들은 대충 감(?)을 잡고 자기목소리를 감춰온게 지금까지 민자당의 일상적인 회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공화계 당직자인 조부영부총장이 『정국운영은 지금까지 개혁과 경제활성화라는 쌍두마차였다. 그러나 이제는 안보문제를 포함시켜 삼륜차가 되어야 정국을 풀수 있다』고 함축적인 한마디를 했다. 학생시위를 말하면서 「안보」라는 차원을 강조한 것에는 앞서 보고한 서 내무위원장처럼 학생시위를 「친북한」 「용공」으로 보는 기본시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안기부간부 출신인 서수종 정세분석위원장은 보다 구체적으로 「문익환목사가 통일원장관을 만난다고하는데 정부는 그러한 세력들의 발호를 차제에 견제해야 한다』며 비민주계 의원들이 심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문익환목사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자 사회를 보던 김종필대표가 이를 받아 『문 목사가 통일원 자문위원이라는 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또 김 대표는 회의말미에서 『관용도 정도가 있지,이런 일련의 패륜적 행위에 대해 달랜다든가 관용한다든가의 차원은 이미 벗어났다. 이런 터무니 없는 일을 근절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 참석자는 『양론이 정확히 갈렸다. 문제는 양쪽이 보는 관점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당연히 대응방안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촌평한뒤 『김종필대표가 평소보다 확실하게 입장을 밝힌 것이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사안이 사안인만큼 그럴수도 있다.
한 민주계 당직자는 『아직 흥분이 자라앉지 않은듯 하다』며 비민주계의 태도를 감정적인 것으로 의미축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 민정계 의원은 『개혁한다면서 문제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는 일시적인 것이고,학생들의 시위는 조직적이다. 새 정부 들어 문 목사 등이 모두 풀려나고 6·10 등 과거의 데모가 모두 「민주화」로 칭송되니까 시위학생 숫자가 늘어나고 있지않느냐』라며 이날의 이의제기가 학생시위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혁주체들이 강조하는 여론의 지지·구속자석방·역사재평가 작업 등 지금까지의 개혁전반에 대한 비판임을 분명히 했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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